폐가 - 송종규 폐가 - 송종규 내간 비운 몇 년 동안 거미들은 내 집에 간소한 세간을 들여놨다 비워 둔 시간 또한 촘촘하게 그물에 가둬 놨다 길을 잘못 든 날파리와 시큼했던 시간들, 콩콩거리며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 창문으로 기웃거리던 별빛과 바람의 갈기, 모두 우주에서는 길고 긴 개.. 한줄 詩 2018.06.22
박하와 나프탈렌 - 조원 박하와 나프탈렌 - 조원 창밖으로 쏴 하게 비가 내리고 한철 입었던 블라우스를 개비며 서랍 안쪽에 놓인 백옥의 나프탈렌을 만져보았다 봄비가 우아하게 땅을 녹여 먹듯 독약 처분이 내려진 사랑을 아무렇지 않게 녹여 먹고 싶었다 결코 박하가 될 수 없는 눈부신 독소들 그만 혀끝에 인.. 한줄 詩 2018.06.22
춘천, 그 흐린 물빛의 날 - 강윤후 춘천, 그 흐린 물빛의 날 - 강윤후 수재민처럼 우리는 물가에 서 있었다 체온계를 입에 문 듯 아무도 간밤의 폭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눈 팔며 날으는 물새 두어 마리 침묵을 쓸어모아 강기슭에 부려놓고 덜 부른 노래와 남긴 술도 아쉬움은 아니어사 얼빠져 머뭇대는 성깃 빗발.. 한줄 詩 2018.06.22
장항선 - 나호열 장항선 - 나호열 장항선은 나를 달린다 이 가슴에서 출발하여 이 가슴에서 멈춘다 덜컹거리는 스물두 살은 아직도 스물두 살 멀리 튕겨져 나간 줄 알았으나 아직도 질긴 고무줄처럼 탱글거리는 탯줄은 되돌아와 뺨을 세차게 때린다 세월보다 조금 느리게 달려갔으나 앞은 먹먹한 강이 있.. 한줄 詩 2018.06.21
뒷날 알게 되는 것 - 조항록 뒷날 알게 되는 것 - 조항록 내 또래 사내가 늙은 어미의 손을 잡고 석양 속을 걸어간다 서럽게 느린 두 개의 점 이승의 꼬투리가 툭 하고 내던진 까만 콩알들이 질긴 인연으로 서로를 만진다 내용물을 다 게워내고 빈 깡통처럼 발길에 채였을 것 같은 사내 곁에 악천후에 출렁거리다 온전.. 한줄 詩 2018.06.21
예민한 악기 - 박헌호 예민한 악기 - 박헌호 예민한 악기가 있다, 어깨를 움츠린 채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이거나 다리를 건너가는 아침이거나 신발을 고쳐 신는 한낮이거나 그것은 어김없이 운다, 체 게바라는 체 게바라 로맹가리는 로맹가리 빈 항아리처럼 울다가 한숨을 토한다, 바뀌기를 기다리는 붉은 신.. 한줄 詩 2018.06.21
자존 - 김언 자존 - 김언 마음 하나 뗐는데 말이 멋있다. 술을 따른다. 멋있지 않아도 좋으니까 이걸 좀 세워달라. 술잔은 많다. 변명도 많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어느 술자리에서든 마찬가지 꼬리를 남기고 사라진다. 마음이 사라진다고 편안해질까? 몸이 사라진다고 정말 어두워질까? 나는 사.. 한줄 詩 2018.06.20
사랑은 구름의 일 - 박남희 사랑은 구름의 일 - 박남희 구름은 너무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위험하다 그럴 때 구름이 안개가 되려는 발상은 더욱 더 위험하다 안개는 지워야 할 것과 지워서는 안 될 것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구름은 그냥 구름이면 된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나이면 된다 구름 사이로 .. 한줄 詩 2018.06.20
불국사로 가기까지 - 정일남 불국사로 가기까지 - 정일남 초행이며 혼자 가는 길에서는 질문이 많아진다 물어본 것, 다시 물어보는 조바심도 있다 처음 오는 길이니 모든 것이 신생의 낱낱이 되는 법 나는 벌써 며칠을, 백제의 몇백 리를 거쳐 낮달 데리고 여기 당도했다 이 길이 동방의 빛 찾아가는 탄식이 되려면 몸.. 한줄 詩 2018.06.20
있지 - 이창숙 있지 - 이창숙 한 사람에 의해 태어난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위해 찔레꽃을 노래했다 - 향기는 슬프다고 먼 훗날 하얀 꽃 닮고 싶은 한 사람에게까지.... 내 일기장 어딘가 죽으면 찔레꽃 한 무더기 되고 싶은 그런 글 있지 밤하늘을 보다가 문득 푸른 우주의 행성처럼 나 빛이 되지 .. 한줄 詩 2018.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