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장항선 - 나호열

마루안 2018. 6. 21. 22:39



장항선 - 나호열



장항선은 나를 달린다
이 가슴에서 출발하여 이 가슴에서 멈춘다
덜컹거리는 스물두 살은 아직도 스물두 살
멀리 튕겨져 나간 줄 알았으나
아직도 질긴 고무줄처럼 탱글거리는 탯줄은
되돌아와 뺨을 세차게 때린다
세월보다 조금 느리게 달려갔으나
앞은 먹먹한 강이 있었고
추격자처럼 다가온 어둠은 퇴로를 막았다
잔뜩 웅크린 채 어미는 이미 늙어
타향보다 더 낯선 고향은
막차를 타고 가는 마지막 역
내려야 할 곳을 알고 서둘러 행장을 챙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적이 울린다
어디에 내려도 고향은 멀고
멀어서 사투리가 긴 장항선 아직도 구불거린다
저녁답 연기처럼 가물거린다



*시집, 촉도, 시학사








스물 두 살 - 나호열
-전태일



너도 걸었고 나도 걸었다
함께 스물두 살을 지나가면서
너는 맨발이었고 나는 평발이었을 뿐
티눈이 박이는 세월을 막지 못하였다
어쩌랴 너는 스물두 살에 멈추어 섰고
나는 쉰 하고도 여덟 해를 더 걸었으나
내가 얻은 것은 평발이 된 맨발이다
나는 아직도 스물두 살을 맴돌고 있고
너는 아직도 더 먼 거리를 걷고 있을 터
느닷없이 타오르던 한 송이 불꽃
하늘로 걸어 올라가 겨울밤을 비추는 별이 된 너와
그 별을 추운 눈으로 바라보는 중늙은이
걸어 걸어 스물두 살을 지나가면서
너는 맨발이었고 나는 평발이었을 뿐
같은 길을 걸었으나 한 번도 뜨겁게 마주치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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