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랑은 구름의 일 - 박남희

마루안 2018. 6. 20. 20:14



사랑은 구름의 일 - 박남희



구름은 너무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위험하다
그럴 때 구름이 안개가 되려는 발상은 더욱 더 위험하다
안개는 지워야 할 것과
지워서는 안 될 것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구름은 그냥 구름이면 된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나이면 된다 구름 사이로
첫사랑이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은 이제 모두 옛일이다
구름은 늘 무언가 쏟아내야 할 말들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구름 곁에 구름을 세워두는 일
구름과 구름이 만나 빗줄기를 쏟아내는 일
천지에 천둥과 번개를 가득 채우는 일


그런 계절을 그냥 여름이라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
뜨겁다고 축축하다고 다 여름은 아니니까
그러므로 여름이 비를 몰고 온 건 아니다
그건 모두 알 수 없는 구름의 일


가령 꽃 같은 것이 문득 구름을 아무데나
우두커니 세워두는 일을
계절의 언어로는 쉽게 해명할 수 없다


구름 밑의 흙이 축축해지는 것도 구름의 일
그러니까 사랑은 구름의 일


그 후에도 구름은 종종
그곳에 빗줄기를 오래 세워둔 적이 있다



*시집, 고장 난 아침, 애지








이별의 속도 - 박남희



구름과 이별한 빗방울이 전속력으로 뛰어내려
제 몸을 부수는 것은 목마른 땅의 간절한 눈빛이
빗방울을 전속력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별의 속도는 마음이다
마음이 버리고 마음이 잡아당긴다
언뜻 보면 지구는 태양이 버린 마음이고
달은 지구가 버린 마음이다
멀어져가는 지구와 달을 끝내 버릴 수 없어
다시 끌어당기는
태양과 지구의 마음을 어쩔 것인가
사람들은 그것을 인력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사실 사랑이다
멀어지려는 것을 끌어당기다보면 어느새 둥근 사랑이 된다
이별의 속도가 제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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