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있지 - 이창숙

마루안 2018. 6. 20. 19:03



있지 - 이창숙



한 사람에 의해
태어난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위해
찔레꽃을 노래했다
- 향기는 슬프다고
먼 훗날 하얀 꽃 닮고 싶은 한 사람에게까지....
내 일기장 어딘가
죽으면 찔레꽃 한 무더기
되고 싶은
그런 글 있지


밤하늘을 보다가 문득
푸른 우주의 행성처럼
나 빛이 되지 못할 때,
멀리서 미친 고양이가
아기 흉내로
비명 지르며 내 대신 울어 줄 때,
기도로 참된 인간이고 싶은
그런 눈물 있지


가끔씩 그림 속에서
겨울 바다를 만나고
해안선 비스듬히 정박한 배가 되어
내 몸에 들어온 바다와
웃다가 울다가
때론 시퍼런 칼날 들이대며
끝내 한 몸이고 싶은
그런 소망 있지



*시집, <바람든 무, 내 마음에게>, 눈빛








기억상실 - 이창숙



서러운 건 발가락 하나쯤 다친 게 아니지
욱신대는 엄지발가락 하나쯤 없어지면 어떠리
살아가며 내 몸 어딘가를 다친다는 건
마음 팔 다리 통제 불능일 때
나 스스로 나를 잠그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것을, 이상하지
그럴 때마다 내 삶의 상자와 안에 들어 있는
슬픔의 방이 하나씩 들어올려져
하늘로 올라갔었지
그 자리엔 작은 황토빛 무덤이 생겨나지
까만 상실로 오동나무 씨앗 하나 날아와
그 속에서 다시 웅크리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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