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소리 - 손택수 종소리는 내겐 시장기 같은 것, 담벼락이나 슬레이트 지붕 위에 올라가 고양이처럼 오도마니 웅크려 앉은 저물녘이면 피어나는 분꽃과 함께 어린 뱃속에서 칭얼대며 올라오던 소리와도 같은 것, 그 굴풋한 소리를 그리워하며 살게 될 줄 어찌 알았을까만 야채트럭의 마이크 소리가 골목을 돌고, 저문 여울 속에서 배를 뒤집는 피라미떼처럼 반짝이는 새소리가 살아나고, 담벼락 위에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간 옆집 누나의 종아리, 종아리처럼 하얀 물줄기가 찰, 찰, 찰 화단에 떨어지는 소리도 들려오고 어쩌면 먼지 풀풀 날리는 소음으로나 그쳤을 이 많은 소리들을 종소리는 내게 주고 간 것이 아닌지 그 소리들도 멀어지는 종소리를 듣기 위해 가만히 멈춰서 있었던 것이나 아닌지 찬장에 엎어놓은 밥그릇처럼 저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