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누운 당신 - 황형철
이 소란이 잠잠해지고 말면
더욱 희미한 호흡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승의 숨으로는 갈 수 없는
가파른 길을 두고
돌아설 수밖에 없는 나는
모로 누운 당신의 두 손을 잡고
이별의 언저리를 서성이는데
소슬히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을 뚫고
강물처럼 잔잔한 당신의
착하고 순했던 평생이 밀려온다
딴전 한번 없이
예까지 온 생애도 측은한데
당신의 끝은
설움에 젖어 야위었고
우리가 건너야 할
서로 다른 벼랑을 보며
행여 들킬까 꾹꾹 울음을 누른다
나의 무엇을 당신에게 지녀줄 것인가
당신의 무엇을 나는 지닐 것인가
바람도 파랑도 없이
내 전부를 흔드는 당신
*시집/ 사이도 좋게 딱/ 걷는사람
뒤 - 황형철
내 뒷모습은 나 자신의 절반인 것인데
사이도 좋게 딱 반반씩 나눈 것인데
번번이 앞모습만 매만졌다
벽에 의자에 침대에 바위에 나무에 너에게
툭하면 앉고 기댄 탓에
세상의 소란 다 삼킨 채
짓눌린 나의 뒤여
아무것도 가질 수도 만질 수도 없이
잠잠한 그늘만 드리운 뒤야말로
응당 앞이 아닐까 하는 생각
뒤라고 알고 지낸 많은 것들이
실은 진짜 앞이 아닐까 하는
# 황형철 시인은 1975년 전북 진안 출생으로 광주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과 계간 <시평>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람의 겨를>, <사이도 좋게 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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