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인생은 간결하게 - 쥐디트 크릴랑

요즘 부쩍 미니멀리즘에 대한 관심이 많다. 아니 최대한 실천하려고 한다. 내가 간편한 삶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박경리 선생의 책이었다. .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은 아니고 박경리 선생이 노년의 사유를 담은 시집 제목이었지만 나는 이 제목에서 확 꽂혔다. 그러고도 멀뚱멀뚱 마음만 먹고 있던 차에 어느 날 확 저질렀다. 우선 책에 대한 해방이다. 열 권쯤 남기고 큰 방 사면을 전부 차지하고도 모자라 거실 한쪽을 가득 채웠던 책들을 몽땅 처분하는데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보내고 싶지 않았던 열 권의 책도 떠나고 내가 소유한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읽고 나서 스무 권쯤 모아지면 어김 없이 헌책방으로 직행한다. 박경리 선생처럼 책에서 해방 되니 참 홀가분했다. 처분하고 나서 곰곰 생각하며 과..

네줄 冊 2018.07.03

빌 게이츠의 화장실 - 이순희

빌 게이츠의 화장실이라. 다소 선정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유용하고 알차다. 이 책은 제목처럼 화장실에 관한 환경 문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목은 사람 분뇨를 처리해 에너지와 식수를 만드는 에너지 회사가 있는데 거기에 투자한 사람이 억만 장자 빌 게이츠여서 따온 이름이다. 화장실은 매일 드나들지만 친숙한 공간은 아니다. 지금이야 실내에 화장실이 있어 편하게 볼 일을 보고 물만 내리면 끝이지만 예전에는 그러질 않았다. 지금보다 훨씬 친환경적이긴 했어도 실내에 있는 수세식 화장실보다는 불편했다. 문제는 지구상에 그 재래식 화장실마저 없어서 야외에서 볼 일을 보는 사람이 엄청 많다는 거다. 스마트폰이 대세인 이 개명한 세상에 화장실이 없어 매일 으슥한 철길 부근이나 벌레 득실거리는 숲속에 들어가..

네줄 冊 2018.06.28

숨결이 나를 이끌고 갔다 - 이필형

올해부터 고국 산천을 걷기로 마음 먹었는데 겨우 두 번 다녀왔다. 지리산 둘레길 한 구간과 백두대간 한 구간이다. 한 번 출발하면 사나흘씩 시간을 내야해서 계획을 세웠다가고 막상 떠나려면 이런저런 일이 생겨 미루다 보니 시간만 흘렀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틈틈히 시간 나는 대로 북한산 둘레길과 한강변을 하루 종일 걷기도 하지만 좀 더 호젓한 길을 오래 걷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이 책은 그 아쉬움을 달래주는데 큰 일조를 했다. 여행책을 좋아하긴 해도 막상 읽으려면 유명 관광지나 맛집 탐방 위주여서 흥미가 떨어진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철저하게 고독한 길을 혼자 걸은 저자의 내면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까다롭게 골랐는데 읽어 가는 동안 그 길에 동행한 기분이다. 이 책을 쓴 이필형은 1958년..

네줄 冊 2018.06.08

검사내전 - 김웅

올초부터 읽어야지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읽게 되었다. 나올 때부터 흥미를 주는 책이었는데 읽으면서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든 영화든 고르고 골라 선택했는데 막상 접하고 아니다 싶을 때가 많은데 이 책은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은 제목을 영화 검사외전에서 따온 듯하다. 출판사의 영업 방침이니 그렇다손치고 오락범죄 영화의 한계이기도 하겠으나 구성이 엉성한 영화에 비해 이 책은 현직 검사가 체험을 바탕으로 쓴 아주 생생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영화보다 훨씬 재밌다. 저자 소개를 하면 1970년 생으로 서울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인천지검에서 첫 경력을 시작한 이래 여러 지방 검찰에서 평검사 생활을 했다. 회사원과 마찬가지로 경력이 쌓이면서 승진을..

네줄 冊 2018.06.02

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 정규웅

서점을 서성거리다 우연히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와 고른 책이다. 그것도 30년 전인1980 년대의 문단 풍경이라니 그 시절을 참 철없이 거쳐왔던 내가 솔깃했음은 당연하다. 나의 20대가 워낙 폭풍처럼 지나갔기에 당시의 문단 풍경이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다. 대부분 나중 다른 사람의 전언이나 글에서 읽은 기억인데 이 책에서 읽은 당시의 문단 풍경이 무척 흥미로웠다. 나는 근본 없는 문학병을 앓았다. 누구에게 진단이나 처방을 받아 본 적도 없었고 혼자 앓는 병은 사방이 毒이었다. 무병처럼 시름시름 앓던 문학병은 이제 만성질환이 되어 중년의 몸에 잠복되어 있다. 어쩌면 영원히 혼자 앓다 죽을 아마추어 병일 것이다. 돌아보면 그 병이 고단한 노동의 시름을 잊고 살게 해준 삶의 비타민이었..

네줄 冊 2018.05.29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 사토 겐타로

살면서 병원에 안 가고 당연 약 먹을 일도 없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평생 병원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 건강체질로 태어났거나 아니면 병원 갈 형편이 되지 않은 경우뿐이다. 내 경우 비교적 건강한 편이라서 40 이전에는 포경수술 때문에 병원 간 것 외에는 병원을 모르고 살았다. 한 번도 아픈 일이 없어서는 아니다. 아픈 일이야 일년에 한 번 정도 감기에 걸린 것인데 웬만해서는 며칠 콧물 훌쩍거리며 참거나 정 견디기 힘들면 약국에서 종합감기약 사다 먹는 정도였다. 흔한 말로 감기에 걸려서 병원 가면 1주일이고 안 가면 7일이라는 먈이 있다. 나는 지금도 지독한 감기 아니면 병원을 가지 않는다. 지난 달인가? 약간의 감기 기운이 있었다. 거의 2년 만에 찾아온 감기였다. 하루..

네줄 冊 2018.05.27

백년을 그리다 - 윤범모

미술사학자 윤범모가 한겨레에 연재했던 현역 화가 김병기 선생의 구술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다. 나는 이전까지 김병기 선생을 몰랐다. 김병기 화백이 이중섭의 친구였다는 것도 이 책을 읽고야 알았다. 현재 나이 102세로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 피카소도 90살까지 그림을 그렸다지만 김병기 선생은 100살을 넘긴 현역 화가다. 내가 한국 미술계 역사를 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그리 유명 화가는 아니라는 얘기도 된다. 이 책에도 언급하지만 김병기 화백은 이중섭, 박수근, 이쾌대, 김환기 등 한국 미단의 쟁쟁한 미술인과 인연이 깊은 분이다. 어쨌든 이 책으로 인해 지나온 한국 미술사를 알게 되었다. 은둔의 나라였던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새로운 학문이 들어왔..

네줄 冊 2018.05.24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 오찬호

제목부터 참 도발적이다. 태어나자마자 속았다니 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경쟁에서 살아 남는 처세술을 위한 책인데 하도 많은 책이 경쟁을 하니까 제목으로라도 한번 낚아보려는 출판사의 속셈이었을까. 제목의 첫 인상은 이랬다. 이라는 부제는 눈길을 끈다. 요즘 출판계가 너도 나도 무슨무슨 학 등 학자를 붙여서 제목 정하기가 유행이다. 적당히 안전빵으로 묻어 가기 좋기 때문일까. 어쨌든 이 책은 사회학 책이다. 보통 이런 책이 딱딱하고 지루하다. 저자는 온갖 지식을 다 늘어놓고 독자는 읽으면서 앞의 내용을 잊어가면서 읽기도 한다. 다 읽고 나서 그냥 좋은 얘기 같기는 한데 뭘 말하려는 거지? 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무식하단 소리 들을까봐 적당히 이해한 척 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럴 필요가 ..

네줄 冊 2018.05.20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 박숙자

저자의 이름이 숙자에다가 삼중당 문고 세대의 독서문화사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어서 저자의 나이가 많은 줄 알았다. 저자의 다른 책인 에 나온 프로필을 보니 1970년에 태어났다. 이 책에는 저자의 출생년을 뺀 걸 보면 누구든 나이를 먹으면 밝히고 싶지 않은 게 늘어나는가 보다. 난데없이 저자의 나이를 들먹이냐면 이 책의 내용이 해방 이후 한국전쟁 무렵부터이기 때문이다. 언급하는 도서들로 봐서는 최소한 1940년대에는 태어났을 법한데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자신감 있는 글발로 그 삭막한 시대의 독서사를 설파하고 있다. 이 책의 장르를 꼭 분류하자면 문화사를 다룬 역사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읽은 책들을 나열하면서 그 시대의 사회 단면을 세세히 기록했다. 전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책에 나오는 인물을 등장시켜..

네줄 冊 2018.05.16

피었으므로, 진다 - 이산하

한라산의 시인 이산하의 사찰기행문이다. 1960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난 이산하 시인의 본명은 이상백, 그는 태어날 때부터 시인이었지 싶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낸 시집은 딱 두 권뿐이다. 그는 외할머니가 주지로 있는 사찰에서 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이산하 시인이 전국 사찰을 돌며 쓴 기행문이다. 그의 발길을 따라 독자는 오고 가는 과정에서 사무친 그리움을 느끼기도 하도 내려 와서 제대로 살지 못함을 반성하기도 한다. 비록 많은 시는 쓰지 못했지만 시인 행세를 해도 충분히 설득이 되는 글이다. 은해사를 다녀 오며 쓴 대목에 이런 문장이 있다. . 은해사는 추사의 글씨가 많기로 유명한 절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곳을 가 봤지만 은해사는 못갔다. 이 책으로 그 절에 완전 빠졌다. 시인은 ..

네줄 冊 2018.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