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한식의 품격 - 이용재

한식의 품격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으나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많은 책들이 제목이나 광고만 요란하지 알맹이가 빈약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목과 내용물이 잘 어울린다. 모처럼 품격 있는 음식 비평글을 읽었다. 여기저기 온통 게걸스런 먹방만 있지 제대로 된 음식 비평 불모지에서 이렇게 고급 비평집이 나왔다. 품격 있는 음식 평에다 저자의 글발도 좋다. 두 가지 다를 잘 하는 사람은 드문데 이 사람은 다르다. 비평도 예리하고 논리적인데다 글발이 좋으니 술술 읽히면서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5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흥미가 더해지면서 단숨에 읽게 만드는 것도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빼어난 글발 때문이다. 편리한 것만이 능사인 스마트폰 세상이라 긴 글이 잘 안 읽히는다는데 이..

네줄 冊 2018.04.28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 박생강

다른 점은 재산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무진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무척 보수적이다. 분단과 더불어 시작된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을 잡았던 기득권층은 보수당이었다. 친일과 반공으로 무장한 그들이 조중동을 애독하고 종편을 사랑한다. 소설 속의 사우나에도 늘 종편을 틀어 놓고 있다. 그 화면을 보면서 상류층은 종북과 빨갱이 타령으로 혀를 찬다. 그런데 종편을 번갈아 틀면서도 하나의 종편만은 외면을 하는데 바로 JTBC다. 이 방송사도 그들이 사랑하는 중앙일보 계열이지만 손석희 사장이 오면서 그들과 멀어졌다. 이 소설 제목이 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킬 것과 감춰야 할 것이 많은 그들에게는 JTBC가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종일 조중동과 TV조선을 보면서 세상을 바라보니 당연한 ..

네줄 冊 2018.04.25

연장전 - 박점규, 노순택

노동운동가 박점규의 책이다. 그는 일관된 시선으로 소외 받는 노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 현장에서는 그 직업에 맞는 연장이 필요하다. 이 책이 바로 연장으로 밥값을 버는 사람들의 현장 이야기다. 노동 현장에서 연장은 아주 중요하다. 어쩌면 연장은 노동자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남자의 성기를 연장이라 부르기도 하니 연장은 사람과 뗄래야 뗄 수 없는가 보다. 박점규가 쓴 연장전은 육체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밥을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이 참으로 신성한 일이지만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이 책에서 여러 분야의 노동자를 소개하고 있지만 눈길이 많이 가는 분야는 네 가지다. 미싱사, 화물기사, 간호사, 요리사다. 모두 사자 돌림이지만 노동 강도에 비해 수입은 그리 많지..

네줄 冊 2018.04.23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 이종형 시집

간만에 좋은 시집 하나 만났다. 며칠 전 이종형 시인이 5.18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학상 받은 시집치고 감동을 준 시집이 별로 없었던 경험 때문에 며칠 미적거리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집어들었는데 시편 하나 하나가 심금을 울린다. 이틀에 걸쳐 세 번을 반복해서 시집 전체를 읽었다. 내가 요 근래 이렇게 반복해서 읽은 시집이 있었던가. 희안하게도 읽을수록 감동이 배가 되었다. 처음 읽었을 때 명료하게 들어오지 않던 시도 두 번째에서 확연하게 가슴에 박혔다. 한 사람의 일생이 시집 전체에 담겼다고 해도 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묶은 시집임을 느꼈다. 실제 시인은 마흔 여덟에 늦깎이로 문단에 나왔고 데뷰 13년 만에 첫 시집을 냈다. 시집에 실린 시 전체가 고른 작품성을 갖고 있는..

네줄 冊 2018.04.21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 김규항

김규항의 글을 좋아한다. 그가 사는 삶도 말도 글도 확실하게 본인이 좌파라고 인정하는 것도 좋다. 그가 불온하기 짝이 없는 B급 좌파여서 더 좋다. 얼마 전에 그가 만난 좌파들의 삶을 기록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좌파들의 좌판에 제대로 설득되었다.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살더니 제목도 많이 순화되었다. 제목에 확 꽂히는 책이 내용이 부실해서 실망할 때가 있는데 이 책은 가끔 꺼내 다시 읽고 싶은 구절이 참 많다. 그는 용맹하게 고독해야 한다면서 이라고 말한다. 는 문구가 서늘하게 스쳐간다.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이란 바로 이런 문장이다. 배끼고 싶은 문장이다. 이 책의 엑기스라 할 수 있는 구절을 한 곳을 더 옮긴다. 이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나에게 잠시 뒤를..

네줄 冊 2018.03.12

미식가의 허기 - 박찬일

이 사람의 책을 참 많이 읽었지만 이제야 후기를 남긴다. 문학을 전공한 요리사란 직업이 흥미로워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 사람이 운영한다는 혹은 일한다는 식당에 몇 번 가서 음식을 먹기도 했으나 음식으로는 그리 감동을 받자 못했다. 이 책을 비롯해 그가 쓴 책은 늘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탈리아 요리를 시작으로 한국의 오래된 식당을 찾아 문화를 발견하고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음식 문화가 일천한 우리에게 이런 작가는 큰 자산이다. 외국 생활을 할 때 궁금했던 것은 왜 우리에게는 음식 문화가 부실한가였다. 프랑스, 중국, 터키 등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음식은 빼고라도 일본이나 태국 음식이 글로벌 음식으로 먹히는 것이 부러웠다. 기껏 우리 음식은 호기심 많은 몇몇 미식가의 흥미를 자극하..

네줄 冊 2018.03.07

선배 수업 - 김찬호, 김융희 외

이 책은 읽기에 조금 거슬리는 경어체 문장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혀서 다행이다. 아마 여섯 명의 강사가 평소 내가 관심을 두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청중이 되어 강의실에 앉아 듣는 심정으로 단숨에 읽어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노년 인구 때문인지 요즘 중년 이후에 대한 자기 관리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편인데 대부분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들이다. 허술한 내용으로 시대에 편승해 독자를 현혹하는 저자와 출판계의 상술 또한 대단하다. 그들도 먹고 살아야겠으나 출판계 만큼은 좀 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읽고 나서 배신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아무 책이나 읽지 않는 내가 열 권 읽어 겨우 한 권을 이 블로그에 언급할 만한 책을 건진다. 바로 이 책 선배 수업도 그중 하나다..

네줄 冊 2018.03.04

종점식당 - 김명기 시집

오래 소장하고 싶은 시집 하나를 발견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집어든 시집이었는데 첫장부터 가슴이 시리도록 후비는 문장에 홀딱 빠지고 말았다.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석 달, 머리맡에 두고 틈이 날 적마다 내쳐 몇 편씩 읽다가, 어느 날은 아껴가면서 한 편씩 읽다가, 또 어느 날은 시 읽는 도중에 뿌연 안개 자욱한 창밖을 한동안 바라보곤 했다. 단언컨데 근래 읽은 아니 몇 년간에 읽은 시집 중에서 단연 앞자리에 놓는다. 거의 전 편을 이 블로그에 필사해 옮겨 놓고 싶을 정도로 어느 것 하나 빠지는 시편이 없을 정도로 고른 작품성을 보이고 있다. 운 좋게 걸린 시집이 내 인생 시집이 된 경우다. 김명기 시인은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강원도 태백에서 성장했다. 울진과 태백은 경북과 강원도로 구분되지만 거의 근..

네줄 冊 2018.03.02

있는 것은 아름답다 - 앤드루 조지

요즘 죽음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손이 가는 책이 그렇다. 또 읽고 나서도 절반이 넘는 책이 독후감 없이 그냥 넘어가는데 이 분야 책은 느낌을 쓰게 만든다. 그만큼 인상에 남는다는 얘기다. 유난히 살고 싶은 요즘이다. 이 책은 얼마전에 같은 제목의 전시장을 다녀오고 나서 읽게 되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스무 명의 환자 모습을 찍은 사진에다 그들과의 인터뷰와 편지를 담은 책이다. 전시회의 연장선이다. 책은 술술 읽혀서 금방 읽는다. 그럼에도 이곳에 느낌을 적는 것은 그들의 진솔한 편지글이 인상적이어서다. 이라는 중년 여성의 편지다. 무섭다. 혼자 있는 게 무섭고, 절망스럽고, 이제 다 끝난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싶다. ..

네줄 冊 2018.02.28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 허대석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래서 그 마지막 삶을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가가 문제다. 누구나 가능하면 편안하게 세상를 떠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대부분 삶을 마감할 때 의식이 분명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이 이 문제다. 바로 연명의료에 관한 거다. 사람은 어제 장례식에 다녀왔어도 자신은 금방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문제 또한 닥치지 않으면 남의 얘기로 치부할 수 있다. 허대석 교수는 이 제도를 파헤쳤다. 올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다. 옛날에는 환자가 의식이 없고 회복 가능성이 희박할 때 가족들은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공호흡기 같은 의료장치를 제거해서 환자 치료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의사는 충..

네줄 冊 2018.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