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빌 게이츠의 화장실 - 이순희

마루안 2018. 6. 28. 20:01

 

 

 

빌 게이츠의 화장실이라. 다소 선정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유용하고 알차다. 이 책은 제목처럼 화장실에 관한 환경 문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목은 사람 분뇨를 처리해 에너지와 식수를 만드는 에너지 회사가 있는데 거기에 투자한 사람이 억만 장자 빌 게이츠여서 따온 이름이다.

화장실은 매일 드나들지만 친숙한 공간은 아니다. 지금이야 실내에 화장실이 있어 편하게 볼 일을 보고 물만 내리면 끝이지만 예전에는 그러질 않았다. 지금보다 훨씬 친환경적이긴 했어도 실내에 있는 수세식 화장실보다는 불편했다.

문제는 지구상에 그 재래식 화장실마저 없어서 야외에서 볼 일을 보는 사람이 엄청 많다는 거다. 스마트폰이 대세인 이 개명한 세상에 화장실이 없어 매일 으슥한 철길 부근이나 벌레 득실거리는 숲속에 들어가 일을 치러야 한다면 믿겠는가.

이게 실화냐?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 또한 실화다. 인도나 아프리카 많은 지역에서 실제 집에 화장실을 못 갖춘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원조단체에서 공중 화장실을 지어주고 화장실 건설비도 지원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한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에서는 화장실을 집에 두면 안 된다는 교리 때문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심지어 인도의 시골 학교는 화장실이 없어 여학생들이 등교를 포기하고 심지어 볼 일을 보기 위해 숲속에 들어갔다 집단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단다.

전부 이 책에 기록된 내용이다. 한국인 저자인 이순희 선생은 비정부조직인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전문위원으로 인류 최대 현안인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모으고 적절한 대응 방안을 찾는 일을 돕고 있다.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거기다 이런 책까지 썼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얇은 책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엑기스로 가득하다. 노숙자도 억만 장자 빌 게이츠도 사람은 누구나 똥을 싼다. 예전의 똥은 거름으로 썼기에 재생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일종의 공해물질이다. 편하게 볼 일 보고 변기 버튼 하나 눌러 집안에서 내 보내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 똥이 하늘로 사라지거나 땅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하수구를 타고 정화조를 거쳐 하수처리장으로 간다. 그곳에 모인 똥들을 처리하기 위해 기계를 돌려야 하고 많은 인력과 에너지를 쓰게 된다. 결국 내가 똥을 싸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누군가 내 똥을 처리하기 위해 비용을 들이고 땀을 흘린다는 것이다. 하수처리장은 엄청난 에너지를 먹는 하마다.

모든 환경 문제가 그렇다. 내가 자동차를 운전하며 편리함을 누릴 때 거기서 나온 배출 가스로 먼지가 발생하고 내가 시원하기 위해 에어컨을 돌리면 실외기에서 발생한 열로 바깥 온도가 올라간다. 다 편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결국은 그 대가를 미세먼지와 폭염으로 돌려 받는다. 자연 규칙에도 공짜는 없다.

내가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공기청정기를 돌려도 잠깐의 안전일 뿐 미세먼지는 누구나 공평하게 공동으로 마셔야 한다. 편리함 뒤에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는 이유다. 화장실도 그렇다. 개발이 덜 된 많은 나라들이 실내 화장실을 갖추기 힘든 이유가 물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마실 물도 없는데 똥 싸고 내릴 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가 누리는 이 편리함을 당연한 걸로 받아 들이며 살지만 펑펑 샤워기를 틀어놓고 아무 죄책감을 못 느낄 정도의 낭비는 삼가해야 한다. 검소한 삶과 조금 불편함을 감수 하는 것이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이고 연달아 환경 오염도 줄일 수 있다.

이 책으로 사람의 똥이 화장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공부하게 되었다. 이래저래 학문에도, 항문에도 힘쓰는 계기가 될 듯하다. 좋은 책을 읽은 뒤가 조금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