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 정규웅

마루안 2018. 5. 29. 18:47

 

 

 

서점을 서성거리다 우연히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와 고른 책이다. 그것도 30년 전인1980 년대의 문단 풍경이라니 그 시절을 참 철없이 거쳐왔던 내가 솔깃했음은 당연하다. 나의 20대가 워낙 폭풍처럼 지나갔기에 당시의 문단 풍경이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다.

대부분 나중 다른 사람의 전언이나 글에서 읽은 기억인데 이 책에서 읽은 당시의 문단 풍경이 무척 흥미로웠다. 나는 근본 없는 문학병을 앓았다. 누구에게 진단이나 처방을 받아 본 적도 없었고 혼자 앓는 병은 사방이 毒이었다.

무병처럼 시름시름 앓던 문학병은 이제 만성질환이 되어 중년의 몸에 잠복되어 있다. 어쩌면 영원히 혼자 앓다 죽을 아마추어 병일 것이다. 돌아보면 그 병이 고단한 노동의 시름을 잊고 살게 해준 삶의 비타민이었지 싶다.

이 책에 나온 이야기도 오래 전에 나온 비타민이지만 여전히 약발이 있는 내용이다. 유통기한이 무한할 것이다. 특히 한수산 필화 사건에 얽힌 박정만과 기형도의 인연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한때는 두 시인의 시집을 상비약처럼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

박정만 시인의 <슬픈 일만 나에게>와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은 내 이십 대를 관통한 화살이자 가슴에 바른 빨간약이었다. 이 책에 나온 절절한 내용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음은 물론이다. 왜 어설프게 지나쳤던 그때가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나는가.

잘못 산 지난 날이 후회 막급이어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꼽으라면 이십대를 선택하겠다. 지금은 금지 되었지만 북한산 계속에 발을 담그고 소주를 마시며 문학을 논했던 철부지 청춘이 있기 때문이다.

왜 그땐 먹고 살 궁리보다 놀 궁리가 먼저였을까. 어느덧 당시의 추억들은 빛바랜 잡지처럼 낡았고 가슴에 가득했던 열정은 회한으로 변해 비겁한 뱃살로 저장되었다. 줄어든 머리숱마저 희끗해진 채 건너뛴 30년의 세월이 아득하다.

이 책을 쓴 정규웅 선생은 이전의 책에서도 문단의 아련한 풍경을 생생하게 전달해서 70년대 이전의 내가 모르던 시대를 간접 경험하게 했다. 기자답게 선생이 경험한 맛깔스런 글은 한국 문단사의 세밀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이 책 또한 50대 이상에게는 당시의 문단 풍경이 지난 추억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