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지민의 탄생 - 김종영

마루안 2018. 12. 5. 23:39

 

 

 

작년부터 읽어야지 했던 책이다.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새로 나온 책에 눈길이 가다 보면 목록에 있던 책들이 자꾸 뒤로 밀린다. 밀리다 보면 잊혀지고 그러다 영영 인연이 닿지 않은 책이 부지기수다.

이 책도 그럴 뻔했다.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연이 닿아야 읽게 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어쨌든 한참 뒤로 밀린 목록에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은 퍽이나 다행이다. 김종영 선생은 예전에 읽은 책 <지배 받는 지배자>를 읽고 알았다.

많은 철밥통 교수들이 자리 보전에만 급급하고 학문 연구에 게으른데 이 사람은 예외다. 비교적 젊은 교수여서 깨어 있는 시각과 스스로 천민이라 생각하며 자각하는 지식인이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지식인이고 대학에 이런 선생이 많아야 한다.

학점 후하게 주고 취직 잘 되게 하는 학점 공장으로 전락한 작금의 대학 현실에서 이런 선생은 환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전의 책에서도 느꼈지만 글도 참 논리적으로 잘 쓴다. 이 또한 끊임 없는 독서와 공부에서 나온 결과다.

책 제목도 잘 지었다. 들어 본 적 없는 단어지만 그럴 듯한 단어가 지민(知民)이다. 안다는 것은 토익 점수 높고 시험 잘 보는 머리와는 별개다. 시험 잘 보는 지식은 판검사나 고위직이 되어 내뿜는 구린내와 비리 능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지식은 앎이 아니라 毒이다. 놀라운 것은 그 독이 출세의 잣대가 되어 줄 잘 서기의 능력으로 발휘된다는 것이다. 이 땅에 진정한 지민이 필요한 이유다. 이 책에서 지민이란 지식으로서의 시민을 뜻함과 동시에 시민으로서의 지식인을 뜻한다.

똑똑한 시민, 공부하는 시민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시민의 권리에 반하는 지배지식동맹의 정책에 대항하는 깨어 있는 시민이다. 흔히 깨시민이라는 이런 지민들이 많을 때 집단 지성이 발휘 되어 민주주의가 완성된다.

이 책은 삼성백혈병과 반올림운동, 광우병 촛불운동과 탈경계정치, 황우석 사태와 과학정치, 4대강 사업과 지식 전사들 등 4개 부분을 다루고 있다. 모두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지만 유독 황우석 사태와 4대강 부분을 꼼꼼하게 읽었다.

저자의 논리적인 문장 때문에 거침 없이 술술 읽힌다. 단숨에 읽힌다는 말이 더 맞겠다. 기득권을 합리화하려는 지배지식동맹과 그것을 깨려는 시민지식동맹의 지식투쟁이 생생하게 전달 된다. 반면교사라는 말은 딱 이럴 때 어울린다.

이 책의 말미쯤에서 너무나 당연한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민주주의는 시민적 능력을 요구하는데, 특히 시민의 '지적' 능력은 중요하다. 가령 가장 기본적으로 대표를 선출할 때 투표용지에 적힌 후보자의 이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진정한 지민은 법률책 달달 외운 머리 좋은 사법 시험 합격자보다 투표용지의 후보자를 확실히 읽을 줄 아는 사람부터 출발한다는 거다. 어리석은 백성임을 거부하고 스스로 앎의 방식을 채택해 지민으로 태어나게 해준 저자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