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술통 - 장승욱

마루안 2018. 12. 20. 21:57

 

 

 

얼마전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처음엔 제목을 숯통으로 알고 뽑았다가 자세히 보니 술통이다. 조금 두꺼운 책이라 무슨 철학서인가 했는데 술에 얽힌 산문집이다. 약력을 보니 저자 장승욱은 우리말에 관한 다수의 책을 냈단다.

 

술통은 단숨에 읽게 만들 만큼 흥미가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한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06년이고 저자는 2012년 1월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1961년 출생이니 51년을 살고 세상을 떴다.

 

다수의 우리말 관련서뿐 아니라 시집도 유고 시집 포함 두 권이다. 아! 이 사람 시인이었구나. 중간에 정체를 파악한 나는 시인이 쓴 산문이라 생각하며 읽었다. 술에 관한 예찬이자 담론이라 할까.

 

어쨌든 요즘은 내가 술을 거의 끊다시피 했으나 예전에 술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날 정도로 좋아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도 술 마시고 있다는 동무의 전화를 받고 불원천리를 택시 타고 한달음에 찾아간 적도 있다.

 

저자는 가히 술꾼 중의 술꾼이었다. 갓 쉰을 넘긴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유도 술에 있지 싶다. 저자는 언제나 밥보다 술이 먼저였다. 그렇게 마시고도 어떻게 일상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다시피 한 것도 그렇지만 시작했다하면 2차, 3차까지 술집을 돌며 마시는 그 술 양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지리산 종주 등반길에 됫병 소주를 여러 병 챙겨가 하룻밤에 바닥을 냈다는 문장에서 저자가 술을 해독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지 싶었다.

 

유유상종이라고 술꾼은 술꾼끼리 어울린다. 주변엔 늘 애주가와 大주가들이 있어 술 마실 이유가 생겼다. 그들이 지쳐 하루 이틀 건너 뛰면 저자는 혼자라도 술을 마셨다. 고등학교 때부터 술을 마셨기에 술 실력은 기초가 잘 다져진 셈이다.

 

술통이 꿀통이나 밥통보다 좋았던 저자는 후회 없이 술을 마셨다.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조선일보와 SBS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래서 신촌과, 광화문 주변이 그가 누빈 술집 지도의 중심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자가 진정한 술꾼이었다는 생각보다 지독한 술꾼으로 정의한다. 취한 사람이야 술에 취해 기행을 일삼고 시름을 달랠 수 있지만 주변 가족이 겪었을 고통이 어땠을까에 이르면 허무한 생각이 든다.

 

국문과 출신이어선지 글을 참 잘 쓴다. 중고생 때부터 술을 마셨으면서 언제 공부를 했을까. 방대한 독서량과 예술적 소양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모든 글에 다 공감은 못 하지만 일찍 세상을 뜬 저자가 아쉽다. 그래도 원 없이 마신 술 만큼은 후회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