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대한민국 독서사 - 천정환, 정종현

마루안 2018. 12. 9. 21:00

 

 

 

요 며칠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대한민국 독서사>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다소 두껍지만 무척 흥미롭게 읽히는 교양서다. 국문학을 전공한 문학박사 천정환, 한국학 전문가인 정종현 두 지성인의 역작이다. 한 사람이 완성하기에는 너무 영역이 넓기에 잘 조화된 집필진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지 않았던 훈장 어른을 모시고 공자왈 맹자왈 하던 시대라면 모를까 문맹율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요즘에도 독서율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물며 글을 깨우치지 못한 사람이 많았던 옛날은 오죽했을까.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부터가 자기 이름자 겨우 알아볼 정도로 문맹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생전에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여자가 배우면 팔자가 사나워진다고 외할아버지가 아예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 또한 당시의 많은 동무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단다.

책 읽기는 이렇게 문맹과 연관이 된다. 다행히 나는 문맹을 면해 책도 읽고 가물에 콩나듯 이렇게 독서 후기도 쓸 수 있지 않은가. 그럼 나의 독서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초등학교 1학년 무렵쯤일 거다. 안방 벽지에 바른 신문지였다. 뒤에서 첫 번째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는 벽지로 신문지를 사용했다.

사람이 자주 앉는 아랫목 벽지는 두꺼운 달력으로 바르고 나머지 공간은 천장까지 온통 신문지였다. 한문이 절반이고 모르는 단어가 많아 완전히 이해는 못했지만 읽을 수 있는 신문기사를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면 읽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던가 보다. 천장 가까이에 있는 높은 쪽의 기사를 읽기 위해 친구를 엎드리게 하고 등을 딛고 올라가 읽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네 컷짜리 고바우 영감 시사만화를 보는 재미는 보너스였다.

나의 신문 벽지 독서는 언제까지였을까. 열일곱에 서울 간 누나가 공장 다녀 번 돈으로 사방연속무늬 벽지를 사올 때까지였다. 이후의 독서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뒷처리를 위해 문짝에 걸린 헌책이나 자른 신문지를 통해서였다.

대한민국 독서사는 1945년 해방부터 현재까지 70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60년대 이전은 내가 모르는 시대니 그랬으려니 넘어가고 70년대가 흥미롭다. 이 책에서 다룬 선데이서울과 창작과비평이다. 용돈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기에 내 돈으로 책을 사 보지는 못하고 친구네 집에서 친구 삼촌이 보던 선데이서울에 나오는 연예 기사나 불륜 사연을 재밌게 읽었다.

내가 창작과비평을 읽은 건 80년대에 들어서다. 나의 독서 전성기답게 꽤 열심히 읽었다. 심지어 헌책방을 다니며 70년대 과월호 창비를 사서 읽기까지 했으니까. 나의 사상적 밑바탕이 창비를 통해서 정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창작과비평은 내 허름한 청춘에게 독서의 방향을 설정해주었고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고마운 잡지였다.

이후의 한국 독서사는 나를 많이 비껴간다. 조세희 선생의 난쏘공과 리영희 교수 책을 제외하고는 많은 베스트셀러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처세술이나 인맥잡기 안내책, 재테크에 관한 책들은 외면했거나 읽었어도 별 감흥도 보탬도 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신간 소식을 접하고 이 책은 읽어야지 했다가도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면 순서를 뒤로 밀쳐둔다. 그러다가 못 읽고 지나간 경우가 태반이다. 이 책에서 다룬 독서사가 대부분 많이 읽힌 책 위주여서 언급한 책 중에서 읽지 않은 책이 절반 이상이다.

최근까지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에도 나는 휩쓸리지 않았다. 신간 소식 기사나 출판사의 책 소개를 그대로 믿기보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책을 고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내 책읽기는 계속될 것이다. 어쨌든 한국 독서사는 나의 책읽기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주 유용한 책이었다. 이 책에서 언급한 못 읽은 책 몇 권은 다시 찾아 읽어 볼 생각이다. 인생은 짧고 읽을 책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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