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 박래군

마루안 2020. 7. 1. 22:12

 

 

 

해마다 5월 말이나 6월 초쯤이면 마석 모란공원을 간다. 큰 의미 부여할 것 없는 추모 겸 소풍이다. 기차로도 가고 버스로도 가고 아름다운 소풍이다. 여름으로 접어든 주변 풍경과 마석이란 지명도 모란공원이란 이름도 그렇게 딱 어울리는지,,

이때쯤이면 모란공원 묘지 주변은 망초꽃을 비롯한 각종 들꽃이 지천이다. 잘 정돈된 국립현충원과 대비된다. 나는 칼처럼 각진 현충원의 경건함보다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모란공원이 인간적이어서 정감이 간다.

처음부터 계획적인 묘지 조성이 아닌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이라 더 인간적이다. 줄을 세우지 않아 구불구불 삐뚤삐뚤,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묘지에서 죽은 자의 평등함을 느낀다. 전태일, 문익환, 조영래, 김근태, 노회찬까지 이름만 들어도 두근거리는 분들이 묻혔다.

모란공원에 박래전 열사도 잠들어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열기로 온 나라가 뜨거울 때 한 젊은이가 분신 자살을 한다. 그 학생이 박래전 열사다. 바로 이 책의 저자가 박래전 열사의 형인 박래군 선생이다. 전태일이 죽은 후 그의 어머니가 투사로 변했듯이 박래군 선생도 그랬다.

전태일과 박래전이 그 한몸 불살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을 했듯이 어머니와 형은 스스로 가시밭길을 택한 것이다.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이 책에는 고통과 희생의 현장을 찾아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된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게 만든다.

4.3의 제주도, 전쟁기념관, 소록도, 5.18의 광주, 남산 안기부와 남영동 대공분실, 서대문형무소, 마석 모란공원, 그리고 세월호 참사 현장이다. 전쟁기념관과 세월호 현장을 빼고 전부 가본 곳이어서 더욱 공감이 갔다.

특히 제주 곳곳에 산재한 4.3의 아픈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이 익숙하면서 낯설다. 과연 나는 4.3에 대해 숱하게 들었지만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 아름다운 섬에서 벌어진 아픔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곳곳에 생채기로 남아 있다.

고문 수사의 대명사 남영동 대공분실은 또 어떤가. 독재 정권의 주구들이 없는 죄도 만들고 없는 간첩을 생산해 냈던 고문 창작소였다. 고문으로 죽기도 했고 반 병신이 되어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왜 그들은 편한 길 두고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을까.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무한 자유와 행복은 그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꽃보다 차용증은 없지만 일종의 빚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숭고함이다. 그들을 기리고 기억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그 빚을 갚는 길이 아닐까.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