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죽은 자의 집 청소 - 김완

마루안 2020. 7. 15. 19:42

 

 

 

세상에는 참 많은 직업이 있지만 죽은 자를 위한 직업은 특별하다. 옛날에도 염쟁이라 부르는 장의사와 대신 울어주는 곡비도 있었다. 집에서 죽어야 제대로 장례를 치렀지 밖에서 죽으면 객사라 해서 아예 집안에 들이지 않고 대문 밖에 시신을 안치했다.

지금은 장례 문화가 바뀌어 거꾸로 집안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임종을 하고 그곳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른다. 이 책의 저자 김완은 죽은 자의 흔적을 지우는 사람이다. 일명 특수청소부다.

일본인이 쓴 몇 권의 책에서 유사 내용을 읽었으나 한국인이 쓴 책은 처음이다. 대학에서 시를 전공한 사람답게 문장이 시적이다. 현장을 보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 상상이 되는 참혹한 경우가 많다. 죽은 사연도 참으로 다양하다.

병원에서 유언 남기고 죽는다면야 남은 가족들이 준비를 했겠지만 여기서 다룬 죽음은 고급스런 죽음이 아니다. 죽음에 무슨 고급과 저급이 있을까. 그러나 있다. 죽음에도 빈부 차이가 극명하다. 이 책에서 다른 많은 죽음에서 실감한다.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게 백골로 남은 방을 청소하는 기분을 어떨까. 냄새야 말할 것도 없고 목을 맨 시신이 썩으면서 온갖 벌레들이 잔치를 벌여 벽과 바닥엔 애벌레 껍질로 가득하다. 심지어 시신이 매달렸던 끈까지 그대로인 경우도 있단다.

착화탄을 피워 스스로 생을 마감한 방의 풍경도 자세히 묘사한다. 애인에게 배신을 당한 분노와 우울증을 이기지 못한 사람의 마지막 작업은 꼼꼼했다. 현관문 틈에서부터 문이란 문은 전부 테이프로 봉하고 우편물 투입구와 심지어 싱크대 하수통 구멍까지 밀봉을 했다.

이런 조건에서 착화탄은 완벽하게 기능을 한다. 거기다 밖에서 냄새를 맡을 수 없으니 아무도 그의 죽음을 알 수 없다. 저자는 잘 뜯기지 않는 테이프를 뜯어내며 죽은 자의 마지막 심정을 마치 직접 들은 것처럼 돌아본다.

모든 죽음이 쓸쓸하지만 혼자 살다 죽은 고독사의 흔적을 지우는 일은 쓸쓸함의 극치다. 가난 때문에 아니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사람은 죽음마저 혼자다. 그래서 고독사를 고립사로 고쳐 부른다. 그런 죽음일수록 유족은 시신 인수를 거부한다.

시신 인수가 거부된 망자는 무연고 장례를 치르게 된다. 조문객은커녕 정부에서 대신 치러주는 약식 절차 후에 화장되어 무연고 봉안소에 안치되거나 산골이 된다. 고립사의 흔적도 저자 같은 특수청소부에 의해 지워진다. 쓰던 물건부터 핏자국과 마지막 냄새까지 한 사람의 생전 흔적을 완전히 없앤다.

가난하게 살다 죽은 자에게도 넘쳐나는 것이 있는데 각종 우편물이다. 체납고지서와 독촉장, 가스와 수도, 전기를 끊겠다는 미납요금 경고장, 공급을 중단했다는 최후통첩장까지 우편함에 빽빽하다. 심지어 고물 냉장고와 TV에 빨간 딱지가 붙어 있기도 하다.

저자는 죽은 자의 방을 청소하면서 자주 운다. 명복을 비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살았을 뿐이다. 운명을 맞이한 순간까지 그는 죽을 힘을 다해 자가 삶을 살았을 뿐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러나 꼭 있어야 하는 특수청소부의 고단함을 덜어내는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