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마침내, 네가 비밀이 되었다 - 김윤배 시집

마루안 2020. 7. 8. 18:51

 

 

 

생각하지 않던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김윤배 시인의 <마침내, 네가 비밀이 되었다>다. 김윤배 선생은 1944년 생이니 팔순이 가까운 원로 시인이다. 그동안 10권이 넘는 시집을 꾸준히 냈고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선생의 시가 변한 건지 내 눈이 변한 건지 우연히 잡은 시집을 여러 번 읽었다. 많은 시를 읽기보다 좋은 시를 반복해서 읽는 편인데 이 시집이 그랬다. 그동안 선생의 시집을 몇 권 읽었으나 크게 인상이 남지 않았다.

그의 시가 너무 고급스럽거나 나의 시 읽기가 너무 아마추어거나 둘 중 하나다. 내가 보기엔 시인의 시가 변했다. 이전 시집인 <바람의 등을 보았다>에서부터 느꼈다. 창비에서 나온 그 시집을 읽고 그 이전에 나온 시집을 찾아 읽으며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아! 같은 시인인데도 시집에 따라 내 마음에 들어오기도 하고 아무 공감이 없기도 하다는 것을 이 시인을 통해 알았다. 바라보는 방향뿐 아니라 읽는 시점에 따라 시가 달리 읽히는 것인가. 그동안 마음 가는 시인은 다음 시집도 초지일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와 궁합이 맞는 시인은 분명 있다.

휴먼앤북스에서 낭만시선 시리즈 첫 권으로 선생의 이 시집을 선정했다. 호흡은 길어졌는데 쉬어 갈 여백이 많아졌다. 낭만시의 특성일까. 순해지니 전달력이 배가 된다. 의무적인 공감이 아니라 싯구를 따라가다보면 저절로 감정에 젖어 들게 한다.

대기만성, 팔순이 다 된 시인에게 무례한 단어지만 피래미 독자는 이렇게 단정한다. 중견 시인을 지나 시단의 어른으로 대접 받고 있고 30년을 휠씬 넘은 시력이지만 내 눈에 이제야 들어왔으니 대기만성이다.

언제부턴가 시를 읽으면서 나름의 잣대를 대려는 습관이 생겼다. 이것도 일종의 순수하지 못한 선입견이다. 그러나 모든 시에 공감 능력이 없기에 어쩔 수 없다. 담아 낼 그릇이 빈약해 거대 담론이나 철학을 담고 있는 시를 온전히 읽어낼 재주가 없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데 이 책 김윤배 시집이 그렇다. 오랜 시적 사유와 다듬고 또 다듬은 퇴고로 잘 정제된 싯구가 보석처럼 빛난다. 빼어난 서정성이 담긴 구절에서 긴 여운이 남는다. 추천하고 싶은 시집이기도 하면서 옆에 두고 틈틈히 읽고 싶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