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내 집에 갇힌 사회 - 김명수

한국 만큼 집 문제가 인생의 전부를 차지하는 나라가 있을까. 막장 드라마 욕하면서 보듯이 집 문제 정책 또한 정부를 욕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집값 오르기를 기대한다. 어쩌다 집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간극은 더욱 벌어졌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 축구 대표팀 경기가 열리면 온 국민이 TV 앞에서 축구 전문가가 된다. 실수한 선수를 향해 저 새끼 빼라 아우성이고 패스라도 실패하면 나는 저런 새끼 국가대표로 안 뽑는다고 감독이 된다. 주택 정책도 월드컵 때 축구 전문가 못지 않게 전문가가 많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불만, 집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불만이고 각자 할 말이 있다. 주택 보급률이 100% 넘겼으니 살기 위해서만 집을 소유한다면 주택 정책은 큰 문제가 없을 듯하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저자가..

네줄 冊 2020.05.25

거래된 정의 - 이명선, 박상규, 박성철

세상엔 억울한 사람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행여 나도 이런 상황이라면 속절 없이 감옥에 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만 진실하면 되지, 나만 깨끗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이 책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음을 일깨운다.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에 끌려가 감금 당한 채 고문으로 만들어낸 죄목들이 참으로 다양하기도 하다. 간첩 만들기, 강간 살인범 만들기, 해고 노동자 죽음으로 몰아가기 등, 이 땅의 경찰과 사법부가 자기들의 주인인 국민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아도 좋다. 그냥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 더 나쁜 건 책임을 면하기 위해 아니면 성과를 올리기 위해 경찰이나 국정원이 조사 단계에서 사건을 조작했다고 치자. 기소를 하는 검찰이나 마지막 ..

네줄 冊 2020.05.19

우리가 너무 가엾다 - 권혁소 시집

권혁소 시인은 35년의 시력에 비해 늦게 알았다. 을 읽고 시인을 알았고 를 찾아 읽었다. 기억해 놓았던 시인이었는데 새 시집이 나왔다. 일곱 번째 시집이란다. 삶창에서 나오는 시집은 가능한 읽으려고 한다. 전태일의 정신과 노동 친화적이라 일종의 빚진 기분으로 찾아 읽는 출판사다. 그렇다고 모든 시집을 다 읽을 수도 또 읽었다 해도 모든 시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시에 공감했다 해도 읽고 나서 후기를 쓰고 싶은 시집은 드물다.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다.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시를 억지로 읽는 것도 일종의 고문이다. 마음 가는 책 읽기도 모자란 시간에 자처해서 전두엽에 무리를 줄 필요가 있을까. 문학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온전히 내 것이 된다. 권혁소의 이번 시집이 그랬다. 억지로 쥐어 짠 시..

네줄 冊 2020.05.15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 김재명

이 책은 10년 전에 나온 같은 제목의 책 개정판이다. 2018년에 트럼프가 예루살렘으로 미국 대사관을 이전할 때 많은 국가들이 반대했고 세계 지성인들이 우려를 표명했다. 안 그래도 세계의 화약고인데 더욱 치열한 분쟁이 일어날 것을 염려했다. 이 책이 증보판을 낸 이유도 이런 과정을 비판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 김재명은 지구촌의 국제 분쟁 지역을 다니면서 취재 보도를 했다. 신문사 기자직을 그만 두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의 취재 열정은 더욱 많아졌다.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는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근하게 배웠다. 미국의 영향 탓에 우리는 비교적 우호적이다. 사막의 불모지를 일궈 경작지로 ..

네줄 冊 2020.05.12

똥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진지하게 - 로즈 조지

흥미롭게 읽었고 내용 또한 참으로 유용한 책이다. 과연 내가 눈 똥이 어디로 가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똥은 더러운 것이라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일상에서는 가능하면 똥이라는 단어조차 언급하기 꺼려한다.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섭취해야 하듯 입으로 들어간 음식은 반드시 몸속을 거쳐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사람이 죽을 때면 곡기를 끊듯이 죽어야만 이 배설 행위 또한 멈출 수 있다. 초등학교 때 변소에서 나오는 예쁜 여선생님을 보고 잠시 실망했다. 저렇게 예쁜 사람도 똥을 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영화제에 참석한 여배우 또한 똥을 눈다. 이 책을 쓴 사람도 여자다. 우리 삶의 틈새에 자리한 소외된 주제들에 관심이 많은 저널리스트답게 오랜 기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화장실에..

네줄 冊 2020.05.10

쏘가리, 호랑이 - 이정훈 시집

백무산 시집을 구입하면서 호기심 가는 이 시집 제목이 눈에 띄었다. 들어본 적 없는 시인이라 그저 호기심이었다. 시인도 낯설지만 시집 제목으로는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았다. 간단한 약력에서 첫 시집임을 알았으나 제목이 성의 없게 보였다. 이런 제목을 정하기까지 시집 주인은 물론이고 출판사 당사자도 제목을 뭘로 정할까를 두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을 것이다. 생애 첫 시집인데 시인은 또 얼마나 설렜겠는가. 그 설렘에 한심한 독자는 생뚱맞게 이런 딴지를 건다. 첫 장에 실린 를 읽으며 이 딴지걸이는 바로 무장해제 되면서 구입을 결정했다. 처음 만난 시인의 시 한 편 읽고 감동씩이나 하기에는 성급했으나 한 편씩 읽어가면서 든 생각은 '진짜가 나타났다'였다. 이 시인의 시가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내 맘대로의 느낌..

네줄 冊 2020.05.06

낮달이 허락도 없이 - 이서화 시집

첫 시집이 인상적이어서 마음에 두고 있던 시인이었다. 손꼽아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새로 나온 시집 목록에서 옛 기억을 떠올렸다. 일천한 내 지식으로 시 비평을 하는 것은 언감생심, 그냥 시가 참 마음에 와 닿았었다는 기억이다. 이런 시집을 만나면 설렌다. 이번에 어떤 시들이 실렸을려나. 좋아하는 감독의 새 영화를 보기 위해 불꺼진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설렘이라고 할까.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그래, 무명 독자가 낮달처럼 허락도 없이 불쑥 감상을 쓴다. 좋은 시를 가슴에 담고 그 시를 잊지 않기 위해 또박또박 한 자씩 옮겨 적는 마음 또한 나름 즐거움이다. 한글 막 익히기 시작한 아이가 길가의 간판을 한 자씩 읽는 희열, 그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아이의 눈동자처럼 시집에 오래 눈길이 갔다. 이..

네줄 冊 2020.05.03

나의 장례식 - 임준철

제목부터 마음을 확 휘어잡는다. 제목에 낚이든 내용에 낚이든 이 책은 서문만 읽어도 본전은 건질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인 임준철 선생은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한우물을 파고 있는 우직한 학자다. 대중과 많이 접촉하는 도올 선생 빼고는 한문학과 친숙하게 하는 저서가 많지 않은데 이 책은 대중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귀중한 저서다. 내가 죽음에 관한 책을 유난히 좋아한 탓도 있겠지만 참 흥미롭게 읽었다. 한문학자인 저자의 번역 실력도 이 책의 진가를 더 배가 시킨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외국어를 다루는 학자라도 우리 글 실력이 제대로 받쳐줄 때야 빛이 난다. 한문학도 우리 글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엄연히 중국 글이다. 다만 우리 조상들이 한글은 천한 문자라 무시하고 중국 글을 열심히 배운 덕..

네줄 冊 2020.04.30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 백무산 시집

창비 시집을 좋아한다. 창비는 시집을 많이 내는 대형 출판사 중에서 가장 나와 궁합이 맞는 시집을 낸다. 그동안 참 많은 시집을 읽었지만 그중 창비 시집이 가장 많을 것이다. 내용이 가장 좋지만 다른 요소도 창비 시집을 좋아하는 이유다. 가격도 적당하고, 크기, 디자인, 종이질까지 창비 시집이 가장 무난하다. 크기가 너무 커도, 표지가 너무 딱딱해도 시집은 읽기 불편하다. 다른 책에 비해 시집은 여러 번 읽기 때문에 이런 요소가 더 중요하다. 가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다. 시인의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시집 세 권쯤은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춘문예 같은 화려하게 데뷰를 하고 장기간 잠수 타는 시인이 부지기수인 현실에서 시력 10년은 넘겨야 세 권이다. 아마도 백무산 시인은 시집 부터 만났을 거다. 초기 시..

네줄 冊 2020.04.23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 - 이희인

이런 여행 책을 좋아한다. 어디 가면 풍광 좋은 유명한 곳이 있고 어디 가면 맛있는 식당이 있다는 흔해 빠진 여행책들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이런 책은 보석처럼 빛난다. 여행도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때론 이렇게 사색하는 여행도 필요하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어릴 적 내가 다닌 학교도 공동묘지 터였다. 운동회나 소풍날 늘 비가 내린 것도 그 터에 살던 구렁이를 죽이는 바람에 저주를 받아 그런다고 했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 또한 예전에 묘지가 많았을 것이다. 택지 개발은 도심이 아닌 주변 산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 맞다. 나는 후생을 믿지 않는다. 죽으면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나는 화장해서 수목장을 원한다. 해부용 시신 기증 의사도 있다. 티벳의 풍장이 야만적..

네줄 冊 2020.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