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칸트의 산책로 - 최준 시집

근래 보기 드물게 여러 번 읽으며 음미할 시집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최준의 다. 다섯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경희대 재학 중이던 1984년 등단했으니 37년 전이다. 그 동안의 시집이 다섯 권이면 아주 게으른 시 쓰기다. 이 시집도 네 번째 이후 11년 만에 나왔다. 비주류에 더 눈길이 가는 성격이라 시집도 덜 주목 받는 출판사 시집에 관심이 많다. 최준 시집을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이 시인 소문도 없이 오랜만에 시집을 냈구나였다. 황금알에서 가끔 좋은 시집을 만나기는 했어도 최준 시집은 유독 반가움이 앞섰다. 예전에 누군가 최준의 시를 해설하면서 그를 천재 시인이라 했다. 그때 든 생각은 이 사람이 무슨 李箱이라도 된다는 걸까. 시를 잘 쓴다고는 생각했지만 천재까지는 아닌데였다. 그러나 이 시집 를..

네줄 冊 2021.05.16

욕망과 파국 - 최성각

작가 최성각은 언젠가부터 환경운동가로 불린다. 태생적으로 문명화 사회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 것 같은 사람이다. 신춘문예로 등단해서 몇 권의 소설을 발표했지만 그의 소설을 읽은 적은 없다. 내가 읽은 그의 글은 환경 관련 책이다. 다독을 하는지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많이 남긴다. 이 책도 그가 읽은 환경책에 관한 해설이다. 김종철, 권정생, 그레타 툰베리 등 환경 문제를 지적했던 사람들의 책 위주다. 책 목록을 보니 내가 안 읽은 책이 대부분이다. 평소에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고 환경 문제에 대한 각성을 하고 살면서도 그렇다. 누구 따라할 생각은 없고 이라는 책 하나로 그에 대한 감사와 찬사를 함께 보낸다. 무슨 연애 소설 제목처럼 보이지만 물질을 쫓는 인간의 욕망과 필연적 그 ..

네줄 冊 2021.05.10

노가다 칸타빌레 - 송주홍

아주 흥미롭고 유용한 책을 읽었다. 서른두 살의 기자 출신이 노가다를 하며 겪은 일을 쓴 노동일기다. 세상의 모든 일이 대졸자 엘리트 출신들 위주로 흘러간다. 당연 고졸자가 대우 받는 분야는 거의 없다. 어떤 엄마가 초등학생 아이와 공사 현장 부근을 걷다 학원 가지 않겠다고 투정부리는 아이에게 그랬단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저런 사람 된다." 이렇게 노가다를 하는 사람은 세상의 낙오자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아쉽게도(?) 대학을 나와 기자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어쩌다 잠시 노가다를 했다가 적성에 맞는 것을 알고 아예 노가다 판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일부는 글을 쓸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정신과 육체가 꽤 건강함을 느낀다. 저자는 행복을 최고 가치로 ..

네줄 冊 2021.05.05

남자의 클래식 - 안우성

음악 든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두 가지를 한꺼번에 못하는 성격이라 음악을 틀어 놓고 책을 읽는다든지 그런 걸 못한다. 그럴 경우 둘 다에 집중을 못하기에 되레 안 듣느니보다 못하다. 그래도 운전중에 늘 클래식 음악을 트는 친구의 취미는 본 받을 만하다. 이 책 은 매마른 정서에 단비 같은 책이다. 팔방미인 안우성은 독일에서 공부한 성악가다. 테너로 여러 무대에 섰고 지휘자로 활동했고 대중들을 위한 클래식 강연도 한다. 글도 잘 쓴다. 그래서 클래식에 관한 책인데도 술술 읽힌다. 단숨에 읽었다. 예전에 비운의 화가 반 고흐의 전기를 읽을 때의 감동과 비슷하다. 자신의 일상과 클래식 곡을 설명하면서 작곡가의 인생을 흥미롭게 서술한다. 유행가 한 소절에도 인생이 들어 있다는데 위대한 작곡가의 선율에는 얼마나..

네줄 冊 2021.05.03

나는 어제처럼 말하고 너는 내일처럼 묻지 - 이기영 시집

좋은 시집을 만나면 가슴이 설렌다. 이 시집이 그랬다. 마음 가는 구절에서는 마음이 떨릴 때도 있다. 시인은 어떻게 이런 기막힌 표현을 생각해 냈을까. 나같은 얼치기 독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천연기념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집은 일반적인 시집보다 얇은 편이다. 그럼에도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읽어도 시맛이 계속 우러나온다. 설렁탕도 세 번 우러내면 구멍 숭숭 뚫린 뼈만 남는데 이 시집은 겉장이 떨어져 나가도 시맛은 끄떡 없을 것이다. 아직 시집 겉장은 멀쩡하다. 제목 긴 것이 요즘 시집의 추세인가. 는 우연히 만났다. 걷는사람에서 나온 시집은 믿음이 생겨 일단 손길부터 간다. 이 시집도 그 과정에서 만났다. 최근 시집 출판사 중 걷는사람이 가장 뜨겁다. 2할 타자도 충분히 대접을 받을 만한데 ..

네줄 冊 2021.05.02

한국인의 종합병원 - 신재규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온 지구를 덮친 가운데 책도 그것에 편승해 온갖 의학 서적이 난무하고 있다. 정체 불명의 외국 도서를 베낀 것도 있고 듣도보도 못한 출판사에서 유사 도서를 출판해 틈새 시장을 노린다. 민주주의 유지에 깨시민의 연대가 필요하듯 좋은 책을 고를 줄 아는 깨독자의 안목이 중요하다. 주기적으로 들르는 대형서점을 돌다 보면 엄청난 도서량에 놀란다. 출판계가 불황이라는데 대체 누가 이런 책을 읽을까 싶을 정도로 출판량이 엄청나다. 질병 같은 의학계 도서 또한 근래 출판이 늘었다. 그 중에 이 책 이 눈길을 끈다. 이런 책일수록 저자가 중요하다. 특히 TV에 돈을 내면서까지 출연해 이름을 알린 뒤 각종 지식을 파는 약장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픈 지식으로 대중을 현혹하고..

네줄 冊 2021.04.30

울릉도 오딧세이 - 전경수

나는 울릉도를 세 번 다녀왔다. 파릇파릇해서 청춘이라 했던가.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1986년에 처음 갔던 울릉도의 추억을 어찌 잊을 것인가. 지금이야 쾌속선이 있지만 그때는 포항에서 가는 여객선이 유일했다. 뱃시간만 네다섯 시간 걸렸을 것이다 민박촌 아주머니들이 뱃시간에 맟춰 마중을 나왔다. 일종의 호객행위다. "우리집으로 가입시더." 목소리 작고 제일 얌전한 아주머니를 따라 갔다. 금방이라는 말과 달리 한참을 가서야 도착한 경사진 마을 중턱이다. 덕분에 멀리 포구가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좋았다. 그때는 여행길에 코펠 버너 챙겨 가서 민박집에서 밥을 해 먹어야 했다. 이틀을 묵는 동안 내가 식사 준비를 하면 생선 조림이나 몇 가지 반찬을 갖다 줬던 기억이 난다. 나리봉도 가고 성인봉도 오르고 새벽부터 돌..

네줄 冊 2021.04.27

잡지의 사생활 - 박찬용

잡지를 여럿 정기 구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문예지 한 권, 영화, 여행, 예술지까지 서너 권은 기본이었다. 한창 호기심 많고 싸돌아 다닐 때라 가볍게 세상 흐름을 읽는 데는 잡지가 가장 좋았다. 사는 것이 시들해졌기 때문일까. 지금은 문예지 하나 남았다. 그것도 정기 구독이 아니라 서점 나들이에서 구입한다. 서점에 갈 때마다 구경 삼아 들춰보는 잡지는 여러 종 있다. 요즘 잡지는 비닐에 싸여 있어서 사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잡지도 꽤 된다. 하긴 잡지사 입장에서는 대충 읽고 맛만 본 후 안 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영업 전략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요즘 잡지도 생존 전략이 치열하다. 예전에 좋아 했던 알찬 잡지들도 경쟁에서 밀리고 적자를 견디지 못했는지 사라진 잡지들이 많다. 하긴 나부터 요즘 잡지를..

네줄 冊 2021.04.23

출판사 하고 싶을 때 읽는 책 - 김흥식

서점에 갈 적마다 신간 도서 코너를 제일 먼저 들른다. 신문이든 포털 뉴스든 각종 미디어에서 신간 안내 기사를 읽은 후에 관심 가는 책을 만나면 마음이 설렌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책을 발견할 때는 보물이라도 찾은 듯이 반갑다. 반면 정체 불명의 저자에다 기존에 나왔던 것을 모방한 책을 볼 때면 입안 가득 씁쓸함이 고인다. 유튜브를 볼 때 함량 미달의 내용으로 앵벌이를 하는 양아치 유튜버들이 있듯이 출판계도 앵벌이 수준의 출판인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김흥식 선생은 30년 넘게 출판사를 운영했다. 제목이 너무 정직해서 다소 허술하게 느껴지나 내용은 아주 진지하다. 출판인뿐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주 유용하다. 나도 이 책을 읽고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책의 일생을 파헤..

네줄 冊 2021.04.21

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 정연철

시는 가슴에 작은 냇물을 만든다. 내 속에 존재하는 온갖 감정들을 냇물에 실어 보내자 시가 온몸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뻗어 나간다. 마음에 동요가 인다. 열 일곱 살 소년이 기형도 시를 읽으며 이런 감정을 느낀다. 나는 스물 일곱에도 천방지축 노느라 잘 몰랐던 시를 소년은 자기 가슴에 온전히 담을 줄 안다. 방과 후 물기를 한껏 머금은 숲길을 걸으며 이런 시를 쓴다. 우울의 심연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비 오는 날,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나무들, 혼돈희 틈을 타 은밀하고 용의주도하게 눈물을 흘려 보낸다 저 눈물 소진하고 나면 햇살에 반짝, 자체 발광하겠지 그렇다면 나 지금 지체 없이 울어야 할 때 실제 소년은 자주 운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가 생각나서다. 엄마가 보고 싶고 미안해서다. 소년은..

네줄 冊 2021.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