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미국을 만든 50개 주 이야기 - 김동섭

미국행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툭 하면 엎어지곤 했던 안 풀린 인생에서 미국행은 도피처이자 새로운 인생을 펼칠 곳이라 생각했다. 예전에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미국 교포가 그랬다. "미국은 본인 하기 나름이에요. 외국에서 꿈을 이루기엔 미국이란 나라가 최고에요." 그때는 공감이 안 갔는데 어쩌다 보니 오매불망 미국행을 바라게 된 것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미국 대사관 앞 긴 줄도 서 보았다. 어찌나 비자가 까다로운지 정식 이민은 불가능했다.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다. 정식으로 안 되니 불법 이민을 시도했다. 진짜 여러 군데 알아봤다. 착수금 조로 돈 조금 날리고는 결국 포기했다. 지금도 미국은 세계에서 이민자가 가장 많다. 난민이든 불법 이민자든 어떻게 해서든 미국을 가려고 한다. 어찌..

네줄 冊 2021.08.12

나 혼자 가야 여행 - 황윤

어쩌다 이 사람 책을 여러 권 읽게 된다.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인데 나 혼자 백제 여행을 읽으면서 팬이 되었다. 경주 여행에 이어 세 번째로 이 나왔다. 제목을 기막히게 잘 지었고 내용 또한 함께 여행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몰입이 된다. 책의 저자 황윤은 박물관 마니아다. 혼자 박물관과 유적지를 찾아 감상하고 공부하는 것이 휴식이자 큰 즐거움이란다. 누구 하나가 인스타그램에 맛집이나 괜찮은 여행지라고 소개하면 우르르 벌떼처럼 몰려가는 것이 최근 경향이다. 맛집이든 여행지든 흔히 핫플레이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무리 SNS 시대라지만 다양성이 사라지고 양극화는 심해진다. 빈부의 양극화도 문제지만 문화의 양극화도 심하면 문제가 생긴다. 저자 황윤의 책이 빛나는 것도 몰려다니는 여행이 아닌 혼자 가는 조용한 ..

네줄 冊 2021.08.10

자유로운 영혼으로 혼자서 걸었습니다 - 김인식

예전에 인도 여행 열풍이 분 적이 있다. 그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훌쩍 인도로 건너가 반 년쯤 머물다 온 지인이 있었다. 그때 나도 곧 다녀와야지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영영 못 가고 말았다. 먼 여행지일수록 떠남을 일단 저지르고 봐야한다. 많은 인생사가 그렇지만 여행도 갈 이유보다 못 가는 핑계가 더 많이 생기는 법이다. 내게는 인도도, 티벳도, 몽골도 늘 생각만 했지 떠나지 못한 여행지였다. 내 인생은 한 달쯤 온전히 여행자가 된다는 것이 쉽지 않을 만큼 각박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그랬다. 늘 떠나고 싶었던 여행지이면서 실행하지 못했던 곳, 못가는 아쉬움을 달래느라 여러 여행서를 읽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 책은 김인식 선생이 70살이 된..

네줄 冊 2021.08.06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 - 윤의섭 시집

윤의섭 시인이 소문도 없이 시집을 냈다. 서점에 갈 때마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는 것처럼 시집 코너를 들른다. 요즘은 보통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전이 그런 날인데 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을 부리며 출판 동향을 탐색할 수 있어서 좋다. 언제나 나의 관심은 메이저 출판사보다 무명 출판사 시집이 먼저다. 그런 시집일수록 눈에 띄는 곳이 아닌 모퉁이 아니면 맨 아래 칸이다. 여행에서도 걸어야만 보이는 풍경이 있듯이 시집 코너에서도 쭈그리고 앉아야 보이는 시집이 있다. 어라, 이 시인이 시집을 냈네? 이 시인도 비교적 시집 내는 주기가 4년 정도로 규칙적이었는데 이번 시집은 조금 주기가 당겨졌다. 단순한 디자인의 소박한 표지가 마음에 든다. 사람도 반가우면 손부터 잡듯이 나는 반가운 시집을 만나면 표지를 쓰다듬는..

네줄 冊 2021.07.26

아득한 바다, 한때 - 이자규 시집

최근 오래 눈길이 가는 시집 하나를 만나 행복했다. 지긋지긋한 코로나에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지친 시름을 달래준 시집이라고 할까. 미사여구로 치장한 마냥 밝고 화창한 시들은 아니지만 싯구를 곱씹으며 반복해서 읽는 맛이 쏠쏠하다. 다소 흔한 듯한 라는 제목도 금방 눈에 들어오지만 시집 디자인 또한 눈길을 끈다. 짙은 노을이 진 아득한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표지가 시 내용과도 잘 어울린다. 이자규 시인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와 라는 두 권의 시집에서 자신 만의 독특한 시적 내공을 선보였던 여성 시인이다. 이전에 그리 관심 있게 읽지 않았으나 이번 시집에서 제대로 가슴을 치면서 긴 울림을 준다. 좋은 시는 읽고 나서 마음 속에만 담고 있기엔 미련이 남는다. 다람쥐는 부지런히 먹이를 구해 숨겨 두는 ..

네줄 冊 2021.07.15

스승이 필요한 시간 - 홍승완

살면서 학교에서만 스승을 만나는 건 아니다. 물론 학창 시절 가르침을 준 선생이 가장 큰 스승일 것이다. 아직 덜 여문 상태에서 자아 형성의 방향을 설정해주는 선생은 참 중요하다. 쪽집게 강의로 시험 점수를 올려준 수학 선생을 존경할까. 갈수록 학교가 배움터라기보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능력을 키우는 곳이 되어간다. 대학도 학점 자판기로 취업에 사활을 거는 취준생 양성소로 전락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와 탄식을 함께 했다. 오랜 기간 마음에 담고 있던 스승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 책을 쓴 홍승완은 팔방미인의 재능을 갖고 있어서 딱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하기 힘든 다소 모호한 이력이다. 어쨌든 여러 책을 쓴 사람이기에 작가라 해도 될 듯하다. 그의 가장 큰 밥줄이 글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원 봉..

네줄 冊 2021.07.12

인생에 예술이 필요할 때 - 심상용

이런 저런 일로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책을 읽었다. 단숨에 읽은 것이 아니라 거의 한 달에 거쳐 조금씩 읽었다. 사람의 인생과 예술을 다룬 책을 읽을 때는 저자의 일생이 궁금해진다. 저자 심상용 선생은 참 많은 책을 썼으나 내가 읽은 것은 두어 권뿐이다. 1961년 서울 출생인 심상용 선생은 서울미대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8대학, 파리1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 모르겠으나 저자는 군계일학보다 독야청청에 가까운 학자다. 인생, 죽음, 예술, 사랑, 치유 등 다섯 단락에 나눠 여러 화가의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배치된 그림과 함께 저자의 맛깔스런 해설이 몰입도를 높인다.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 화가의 그림이 많지만 처음 보는 그림도 여럿 보인다..

네줄 冊 2021.07.08

네가 빌었던 소원이 나였으면 - 고태관 시집

이름 없는 시인의 시집이 긴 울림을 준다. 은 고태관의 유고 시집이다. 며칠 간 이 시집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지하철에서도 틈틈히 펼쳐 한 편씩 읽는 맛이 대단했다. 처음 만난 시인일지라도 단 한 편만 읽고 빨려 들어가는 시가 있다. 이 시집이 그렇다. 오래 읽을수록, 여러 번 읽을수록 제 맛이 우러나는 좋은 시로 가득하다. 진공 청소기처럼 읽는 이를 빨아 들이는 묘한 흡인력이 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가다가 꼬리를 물고 따라 오는 여운 때문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 시집이다. 고태관은 생전에 시인보다는 랩퍼로 알려졌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그가 시인이었고 그의 래퍼 활동도 알게 되었다. 시에 곡을 붙여 부르는 것이야 기존에 있었던 일이지만 시를 랩으로 부르는 것은 다소 생소하다. 라..

네줄 冊 2021.07.05

혼자의 넓이 - 이문재 시집

예전에 기형도의 이라는 산문집에서 이문재 시인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기형도가 찾아간 대구의 장정일이 그랬다. 이문재는 초기 시가 너무 좋아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할 거 같아 슬프다고 한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장정일의 말처럼 이문재 시인의 초기 시가 너무 좋았음은 얼치기 독자인 내가 읽어도 동의가 된다. 그런 차에 이문제 시인의 신작 시집이 나왔다는 소식에 헐레벌떡 서점을 찾았다. 평소에는 신간 소식을 접해도 천천히 찾아서 읽지 뭐, 하면서 느긋한 편이다. 아이스크림처럼 시간 지나면 녹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폐기 처분하지도 않을 테지만 서둘러 읽고 싶은 책이 있다. 표지만 만져도 좋은 시집, 단숨에 읽지 않더라도 아니면 잠시 밀쳐두더라도 눈에 띄면 책은 ..

네줄 冊 2021.07.01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 박주하 시집

요 근래 쫄깃쫄깃한 이 시집을 읽느라 더위 느낄 겨를이 없다. 라는 제목 또한 딱 어울린다. 사람도 이름 하나로 평생을 가듯 시집도 세상에 나올 때 제목이 참 중요하다. 백석의 시집 이 백 년이 다 되어 가지만 한국 문학 불세출의 시집 제목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 내 이름에 심한 컴플렉스가 있어서 사람이든 시집이든 좋은 타이틀에 눈길이 가는 편이다. 이젠 이름으로 인한 불만을 놓을 때도 되었건만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이름에 대한 컴플렉스를 벗지 못할 것이다. 박주하 시인의 본명은 박인숙, 동명이인의 시인이 있어서 아님 이름이 너무 흔해서 필명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시인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시도 잘 쓴다. 몇 편 읽어 보면 이 시인의 시적 내공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시가 찰지다고 해야 하나? 내 ..

네줄 冊 2021.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