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개망초 연대기 - 김재룡 시집

지난 몇 달 동안 오래 붙들고 있던 시집을 이제야 내려 놓는다. 작년 가을쯤이었나. 헌책방에 갔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헌책으로 팔리기에는 아직 싱싱한 새책이다. 이런 책을 만나면 깨끗이 읽고 헌책방으로 데려다 준 마음씨 고운 독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서점엘 갈 때마다 신간 코너에서 시집을 들춰보기에 분명 이 시집도 내 손길에 스쳤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 시집을 꾸준히 내고 있는 걷는사람, 반걸음, 달아실, 상상인 등에서 나온 시집은 빼놓지 않고 들춰본다. 모든 시집을 다 읽을 수는 없어도 최소한 제목과 약력과 목차 정도는 훑어 보는 편이다. 그렇게 스쳐 지났던 시집이 우연히 헌책방에서 다시 인연이 된 것이다. 다소 두꺼운 시집을 큰 기대 없이 들췄다가 숨이 턱 막혔다. 여백이 많지 않은 빽빽한 문장을..

네줄 冊 2021.06.26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 - 정인진

흥미로운 내용이라 단숨에 읽은 책이다. 는 판사 출신 정인진 변호사가 생에 처음 쓴 책이다. 24년 간 판사 생활을 했고 지금은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인 저자는 내년이면 칠순이 된다. 그가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이라 이미 읽은 글이 여럿이지만 다시 읽어도 두루두루 공감이 간다. 오랜 기간 판사로 밥벌이를 했고 지금은 변호사로 일 하고 있는데 그가 말하는 밥벌이에 관한 명문장이 있다. .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재판 후에 남는 판결문은 읽기도 어렵다. 또 재판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읽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판결문에 관해서도 아주 세밀하게 언급한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그러고 보면 판사의 밥벌이도 쉽지는 않다. 그 외에는 거나 등을 설명하면서 판사가 작성한 판결은 승복할 ..

네줄 冊 2021.06.22

면역의 힘 - 제나 마치오키

괜찮은 책을 읽었다. 작년 초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초기에 마스크를 사기 위해 장사진을 칠 때도 몇달 고생하면 끝나겠지 했으나 여전히 코로나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런 시국에 딱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다. 건강서가 가짜 정보도 많고 그런 정보가 진실인양 인터넷을 떠돌아 다닌다. 사람 본성이 건강에 관한 정보라면 일단 솔깃해지기 때문에 이런 가짜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 면역력은 인간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도구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각종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저항하지 못하고 질병에 감영되기 쉽고 감염 후에는 이것을 이겨내지 못해서 치명적인 것이다. 반대로 면역력이 강하면 웬만해선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고 설사 감염되었다 해도 물리칠 힘이 있다. 저자는 영국 출생의 여성 ..

네줄 冊 2021.06.20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 장유정

어릴 때 누이가 즐겨 부른 탓에 트로트를 좋아한다. 트로트는 말 그대로 유행가였다. 누이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트로트를 배웠을 것이다. 장독대에 올라가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이미자와 하춘화의 노래를 구슬프게 불렀다. 이 책은 한국 트로트 역사를 기술한 책이다. 클래식에 관한 책은 많아도 대중음악을 연구한 책은 드문데 꽤 흥미롭게 읽었다. 내 혈관에 트로트 선율이 흐르고 있기에 많은 부분 공감을 하면서도 왜 하필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고정이 되었을까에는 늘 불만이었다. 어릴 때 태풍과 함께 퍼붓는 비에 홍수가 난 적이 있다. 동네 담벼락이 무너지고 개울이 터지고 감나무가 부러지고 피해가 막심한데 마을 앞 수문은 멀쩡했다. 그때 동네 어른들 하는 말이 일정 때 왜놈들이 만든 수문이어서 이 물난리에..

네줄 冊 2021.06.15

진보적 노인 - 이필재

제목만 보면 팔순을 앞둔 사람의 인생 회고록처럼 들릴 수 있겠다. 저자 이필재는 1958년 개띠다. 요즘 60대를 노인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하지만 책 제목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여긴다. 우선 이라는 제목에 딱 꽂혔다. 제목도 좋고 깊이 공감 가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런 책을 읽으면 저자가 궁금해진다. 이필재는 서울고를 나와 연세대에서 언론학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언론사에 입사한다. 기자로 복무하다 2013년 쉰다섯에 정년퇴직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여기까지의 약력을 보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류의 사람이다. 나는 강성 보수주의자와 타종교를 배척하는 기독교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저자는 기독교인이면서 꽤나 진보적이다. 한국의 기득권 동맹에 기생하는 개신교 목사들이 종교 자영업자..

네줄 冊 2021.06.10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 양창모

읽으면 저절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왕진의사 양창모 선생이 쓴 에세이다. 환자가 병원을 찾는 것이 일반적인데 의사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 진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담담한 필체로 서술하고 있다. 몸이 불편해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도 있고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첩첩산중에 사는 환자도 있다. 그런 환자를 위해 양창모 선생은 직접 방문해 진료를 하고 처방을 내린다. 환자와 가슴으로 소통하는 따뜻한 의사라는 생각이다. 왜 그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환자가 방문하는데 이렇게 왕진을 가는 것일까. 대단한 소명 의식 때문이 아니라 가능하면 약자와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10년 이상 동네 의사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와 함께 하고 있다.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책에..

네줄 冊 2021.06.05

지독히 다행한 - 천양희 시집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게 책이 없었다면 인생이 얼마나 삭막했을까. 분명 그랬을 것이다. 특히 시집이 그렇다. 영국에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시를 읽으며 달랬다. 당시 한 직원 때문에 한동안 불면증이 올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잠을 못 자 몽롱한 정신에도 시를 읽으면 마음이 진정 되었다. 천양희 시집이 그랬다. 한국에 왔다 돌아갈 때마다 몇 권의 시집을 꼭 챙겼다. 일단 오래 읽을 수 있어서 시집이 좋았다. 그 속에 천양희 시집이 있었다. 2017년, 15년 만에 돌아와서 그동안 밀렸던 시집을 찾아 읽었다.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은 없는데 읽고 싶었던 시집은 많았다. 시에 대한 갈증이랄까. 천양희 시집을 찬찬히 다시 읽는 계기가 되었다. 물도 급히 먹으면 체하듯 시도 급히 읽으면 사레가 들 수..

네줄 冊 2021.06.03

너의 은유가 나를 집어 삼킬 때 - 박순호 시집

박순호 시인이 새 시집을 냈다. 유명한 시인은 아니지만 꾸준히 시집을 내고 있는 사람이다. 시 쓰기의 길이 자신의 삶과 분리되지 않을 때만이 이렇게 꾸준히 시집을 낼 수 있으리라. 이 시인의 어느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에 이런 문구가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이 눈물이었고 상처였지만 쓰여진 시가 눈물과 상처를 치유했다고,, 맞다. 나는 이 문구에서 시에서 벗어나지 못할 이 시인의 운명을 본다. 나같은 독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목숨 걸고 시를 읽진 않지만 이런 시집을 만나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활자 중독의 운명이다. 어떤 시인이 그랬다. 시를 읽는 사람보다 시를 쓰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라고,, 어쨌든 시집 출판이 많은 것은 좋은 현상이다. 쏟아져 나오는 시집 중에 이렇게 인연이 닿는 시집을 만날 수 있으..

네줄 冊 2021.05.30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 마이크 브라운

예전에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잃었다는 기사를 읽고 든 생각이 있었다. 명왕성은 자기를 뭐라 부르든 우주 속의 한 천체로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지 않았고 행성이네 아니네 자격을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우주 속의 티끌에 불과한 인간이 자기 맘대로 자격을 줬다 뺐었을 뿐이다. 나는 지금도 학교 다닐 때 외운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의 마지막 행성으로 여긴다. 아마도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읽고 굳어진 생각 때문일 것이다. 명왕성이 행성이든 아니든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예전에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여길 때가 있었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망원경도 성능이 좋아졌고 더 멀리 더 자세히 하늘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면서 인간의 생각도 수정되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것들이 발견되면..

네줄 冊 2021.05.23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 박남준 시집

박남준 시인이 여덟 번째 시집을 냈다. 1984년 시 전문지 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니 등단 37년이 되었다. 그 세월을 온전히 담아낸 시집이 총 여덟 권이다. 나는 그가 냈다는 몇 권의 산문집은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가 낸 시집 여덟 권은 빼 놓지 않고 읽었다. 초기 시부터 현재까지 그의 시풍을 온전히 느낀 셈이다. 내가 박남준 시집을 처음 만난 건 두 번째 시집으로 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다. 얼음장처럼 서늘하게 스치는 맑은 싯구에서 슬픔이 뚝뚝 묻어났다. 시에 눈도 뜨도 못했던 내가 이 시집을 읽게 된 것은 우연히 라는 그룹 사보에 실린 모악산방 소식과 시인의 인터뷰를 보면서다. 허무주의가 사무치도록 온 몸에 박힌 사람이었다. 그때 느낀 생각이 이 사람 오래 살지 못하겠구나였다. ..

네줄 冊 2021.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