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한국인의 종합병원 - 신재규

마루안 2021. 4. 30. 22:25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온 지구를 덮친 가운데 책도 그것에 편승해 온갖 의학 서적이 난무하고 있다. 정체 불명의 외국 도서를 베낀 것도 있고 듣도보도 못한 출판사에서 유사 도서를 출판해 틈새 시장을 노린다. 민주주의 유지에 깨시민의 연대가 필요하듯 좋은 책을 고를 줄 아는 깨독자의 안목이 중요하다.

 

주기적으로 들르는 대형서점을 돌다 보면 엄청난 도서량에 놀란다. 출판계가 불황이라는데 대체 누가 이런 책을 읽을까 싶을 정도로 출판량이 엄청나다. 질병 같은 의학계 도서 또한 근래 출판이 늘었다. 그 중에 이 책 <한국인의 종합병원>이 눈길을 끈다.

 

이런 책일수록 저자가 중요하다. 특히 TV에 돈을 내면서까지 출연해 이름을 알린 뒤 각종 지식을 파는 약장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픈 지식으로 대중을 현혹하고 심지어 우롱하는 명사들이 많다. 유튜브에 넘쳐나는 가짜 지식들 또한 선무당들이 퍼뜨린다.

 

이 책의 저자 신재규 선생의 약력을 보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샌프란시스코 UCSF의 임상약학과 교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이외에도 일주일에 하루는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가정의학과 클리닉에서 약사로 환자들을 직접 만나고 있다.

 

나는 영국에서 15년 정도 이민자로 살았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영국의 복지제도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현지에서 체험한 셈이다. 한국에서든 영국에서든 워낙 병원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그 유명한 NHS를 경험했다. 예전에 출근길 기차에서 맹장염으로 응급실로 실려갔다.

 

신분 검사, 서류 작성, 수납, 그런 것 없다. 이름 확인하면 끝, 수술 하고 사흘 째 되는 날 퇴원하란다. 계단 있는 3층 집이라 하루만 더 있으면 안 되겠느냐 했더니 의사가 와서 보더니 그러란다. 수술 해주고 밥 주고, 간식 주고, 약 주고, 시중 들어주고,, 돈 한 푼 안 냈다.

 

이런저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지만 영국의 NHS 괜찮다. 적어도 병에 걸렸을 때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은 없다. 나는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를 좋게 본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다. 내가 병원 갈 일이 많지 않으나 한국 병원은 진료가 빠르고 비용이 싸다.

 

이 책의 저자 신재규 선생은 오랜 기간 미국에서 살았고 미국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다. 선생의 어머니가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한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세상을 떠난 과정을 기록했다. 자연히 한국과 미국의 의료제도를 비교하게 된다.

 

미국보다 한국의 문제점을 더 지적하고 있다. 의사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즉석에서 진단을 내린다. 암 진단으로 충격을 받은 환자가 충분히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선생의 어머니처럼 항암 치료로 수명 연장이 크지 않은 전이성 췌장암 환자는 더 그렇다.

 

실제로 췌장암 4기는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한다. 선생의 어머니는 딱 한번 항암치료를 받고 고통 때문에 치료를 거부한다. 항암 치료로 고통을 받다 죽느니 남은 생을 정리하며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하기 원한다. 그 과정 속에서 몇 군데 병원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한국 병원의 문제점을 경험한다.

 

최근 한국의 병원도 영리를 앞세운다. 각종 검사를 권유하고 돈 안 되는 환자는 찬밥 신세다. 항암 치료를 거부한 선생의 어머니도 돈 안 되는 환자라 퇴원을 권유 받는다. 영화 <하얀 정글> 그대로다. 선생은 한국의 종합병원 실태를 경험하고 꼼꼼하게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미국 의료제도는 한국보다 나을까. 실제 미국의 의료제도는 한국보다 문제가 많다. 영화 식코를 보더라도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이 병에 걸리면 속절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 저자도 책에서 말했듯이 한국에서 중증 환자는 자기 부담금이 5%나 혹은 10%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종합병원이 좀 더 환자 중심으로 변하기를 저자는 지적한다. 아마도 내가 아는 한 당장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다. 의대생 늘리는 것부터 난항이고 간호사의 과도한 업무량으로 부실 서비스 또한 문제가 많다. 자기 밥그릇부터 챙기는 병원 종사자들의 이기심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