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좀 일찍 죽었으면 해 - 피재현 자주 부음이 와 가을과 겨울 사이 봄과 가을 사이는 늘 그래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죽고 거래처 사장의 장모가 죽기도 해 가끔씩 부음이 오면, 한 생애가 어떻게 살다가 갔는지 잠깐 궁금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 보관함을 뒤져도 아버지 장례에 그들이 내 부의금을 확인하는 게 먼저야 그들의 조문을 기억하지 못하거든 장례 내내 나는 아버지가 미웠고 아버지가 불쌍했고 아버지가 슬펐거든 아직 겨울이 시작되지 않았어 유실수의 어깨에는 무거운 열매들이 얹혀 있고 아직 바람이 못 견디게 차지는 않아 사실 죽음이 그리 슬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어려울 뿐 선친의 죽음이 그저 그런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사실은 그저 그런 일인데 우리도 그처럼 죽을 테고 난 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