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만원 때문에 옆눈을 가지는 - 김대호

마루안 2021. 2. 28. 19:41

 

 

만원 때문에 옆눈을 가지는 - 김대호


아무리 자세히 봐도 바닥에 있는 것은 계산이 안 된다
작은 곤충의 세계
만원 때문에 옆눈을 가지는 바닥인의 사정
바닥에 툭 떨어지는 소매 단추의 누추
바닥을 벗어나기 위해 매주 로또를 사는 일용직의 낡은 저녁

아무래도 계산할 수 없다
더하면 마이너스 통장이 나오고
빼면 절벽이 나오는 계산법

이 악랄한 계산법은
죽는 일보다 사는 일이 더 지독하다는 이론에서 시작되었다
이목구비를 제대로 갖춘 바닥은 없고 운명을 긍정하는 바닥도 본 적 없다
이 바닥은 다국적으로 평수가 넓어서 난민이 몰려든다
더럽고 누추한 것들이 아무렇게나 모여서 아름다운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다
어느 날 이런 장면을 보면서 침을 질질 흘리며 울었다
먹다 만 밥그릇이 식어 있었다

나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가
지루하고 통속한 질문을 너무 오래 만지작거린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 질문을 지우면 바닥에 닿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착지하지 못하고 무중력 상태로 공중에 둥둥 떠다녀야 한다

다시 계산한다
소박을 더하고 욕망을 살짝 덜어내고 어둑한 저녁을 곱하고 운명적 낭패를 나누어 본다


*시집/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 걷는사람

 

 

 

 

 


바지춤을 올리지도 못하고 - 김대호


뒤로 걸으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누군가 조언해 주지 않았다면
내가 뒤로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태어나서 제대로 뒤로는 걸어본 기억이 없다
왼손으로도 밥을 먹을 수 있지만 한 번도 그러질 않은 것같이
내게 뒤로 걷는 일은 어색한 일
할 수는 있지만 어색해서
굳이 할 필요가 없어서
하지 않고 있는 일이 또 뭐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난 아주 치우친 인간이구나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구나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을까
내 안의 짐승은 오늘도
할 수 있지만 어색해서
꼭 해야 할 필요가 없어서
치열의 마찰열과 치욕의 어금니를
그냥 내려놓고
바르게 살고 있다
검은색의 주술을 풀기 위해
밤은
바지를 채 올리지도 못하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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