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가난의 문법 - 소준철

마루안 2021. 2. 28. 19:59

 

 

 

나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한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 이야기가 훗날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쓸쓸하게 읽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단정했던 일이 빗나간 적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을 볼 때도 어쩌다 삐끗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공연한 걱정이 아니라 누구든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늘 겸손하고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이다. 내가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가고 싶은 곳 다 갈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운 좋게 건강한 몸이고 가난 때문에 돈을 꾸러 다닐 정도는 아니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재산 증식을 위한 투자를 해본 적도 없다. 미련하게 오직 월급 받아 적금 넣는 것이 전부였다. 신용카드 연체를 하거나 빚을 져본 적도 없다.

 

요행을 바라지도 않는다. 경마장이나 카지노도 가보지 않았고 로또나 복권 같은 것을 사 본 적도 없다. 오직 쉬지 않고 일을 해서 번 돈 절약해서 저축한 돈으로 알량한 재산을 늘렸다. "그래서 니가 10억 넘는 아파트에서 살지 못하는 거야"하면 할 말이 없다.

 

혹여 내가 10억 넘는 아파트에서 살려고 했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 했을까. 내 능력으로는 할 것 다 하고 즐길 것 다 즐기면서 10억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재주가 없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하면 세상이 불공정하다는 불만도 사라진다.

 

소준철 선생의 책 <가난의 문법>은 폐지를 줍는 노인의 이야기다. 언제부턴가 노인을 어르신으로 표기한다. 그 호칭으로 인해 노인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이 책에 나오는 70대 할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폐지를 줍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거동이 불편하지만 쉴 수가 없다. 천천히 여유를 부리면서 다닐 수도 없다. 폐지는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다. 자기 구역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폐지 줍는 사람들은 언제 어느 가게 앞에 가면 폐지가 나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조금만 늦게 가면 그곳엔 폐지 대신 썰렁함만 남는다.

 

폐지 줍는 노인의 일상을 이렇게 자세하게 묘사한 책이 있었던가. 사람들은 대부분 유명 기업인이나 정치인의 하루에 더 관심이 많다. 이 책이 소중한 이유다.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기보다 그 가난이 어떻게 생겼고 세습되는지 알려준다.

 

이 책을 읽고 그 동안 내 인생이 비교적 풍요로웠음을 알았다. 내가 폐지 주으러 가는 일은 없겠으나 앞으로 내 인생이 탄탄대로를 걸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