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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부르스 - 강승모

이제는 애원해도 소용 없겠지 변해 버린 당신이기에 내 곁에 있어 달라 말도 못하고 떠나야 할 이 마음 추억 같은 불빛들이 흐느껴 우는 이 밤에 상처만 남겨 두고 떠나 갈 길을 무엇 하러 왔던가 자꾸만 바라 보면 미워지겠지 믿어 왔던 당신이기에 쏟아져 흐른 눈물 가슴에 안고 돌아 서는 이 발길 사랑했던 기억들이 갈 길을 막아 서지만 추억이 아름답게 남아 있을 때 미련 없이 가야지

두줄 音 2021.09.01

합정동에서 누군가를 만난 적 있다 - 전장석

합정동에서 누군가를 만난 적 있다 - 전장석 합정동의 기억은 머물수록 목이 마르다 우기에 편식하던 슬픔이 깊은 우물로 괸 흔적이 있다 갈증 난 길들 마중 나가면 곧 사라지고 꿈속에선 누운 자리마다 물이 스며들어 젖은 이불 한나절씩 말리곤 했지 합정동에서 다시 너를 만나자고 한 건 아주 오래전 그 우물의 흔적을 기억하기 위함 물이끼 서늘한 둘레를 퍼올리기 위함 두레박을 다시 내리면 기장 깊고 웅숭한 울림이 한 됫박의 물이어서 어디든 찰랑이며 흘러넘치곤 했지만 조개우물에서 피를 씻어냈다는 후일담에 잠 밖으로 잠은 자주 나와 있고 정류장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들은 양화진 물살에 잘린 목이 오래 가렵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단 잠두봉에서 두레박을 던져 핏빛 노을을 건져 올린다 *시집/ 서울, 딜큐사/ 상상인 수색역을..

한줄 詩 2021.09.01

모형 십자가 - 정세훈

모형 십자가 - 정세훈 예수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부활을 기념하는 이들로 북적대는 부활절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진 예수의 고난을 직접 체험해볼 모형 십자가를 놓고 누가 지고 갈 것인가 적격자를 찾고 있다 그러나 모형 십자가가 지고 가기에 너무 무거워 보이는 이들로 가득한 광장 자신은 적격자가 아니라 한다 서로가 힘이 없다 나이가 많다 지병이 있다며 *시집/ 동면/ 도서출판 b 매미 - 정세훈 단지, 여름 한 철을 울기 위해 땅속 어둠에서 그 오랜 세월을 버티어냈을까 고목 나무 등걸에 앉아 매미가 울고 있다 수년간을 굼벵이로 땅속 어둠에 묻혀 사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기어 나와 허물을 벗는 굳이 집을 짓지 않고 나무 그늘에 사는 인간이 먹는 곡식은 절대로 먹지 않는 맑은 이슬만 먹고 사는 한 역사..

한줄 詩 2021.09.01

그 여름의 끝에서 - 김보일

그 여름의 끝에서 - 김보일 아마도 흐렸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때 너희들의 윤곽이 어슴푸레해져 너희들의 그림자는 서로를 허락하며 즐겁게 넘나들기도 했지만 후박나무 그늘로 내리는 여름이 하도 성급했으므로 태양은 제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 분주히 잎새들을 둥글게 키우고 바람은 또 무엇을 기억해 내려는지 미루나무 밑동을 바삐 타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보아라 여름은 늘 최초의 여름이었으므로 바람은 늘 새벽으로부터 다시 불어 왔으므로 태양과 바람의 기억은 낡고 낡음으로 가득 찬 세상의 저녁에 새 이름을 부르러 너희들은 갔다 *시집/ 살구나무 빵집/ 문학과행동 별 - 김보일 목동이 별에 관한 지식을 늘어놓자, 스테파네트는 그래, 어쩜, 하면서 맞장구를 쳐 준다. 목동은 신이 나서 별에 관한 모든 지식을 꺼내 놓을 태세..

한줄 詩 2021.08.31

비 오는 날 - 천양희

비 오는 날 - 천양희 하늘이 흐려지더니 마음이 먼저 젖는다 이런 날은 매운맛을 보는 게 상책이다 아귀찜 먹으러 '싱싱식당'엘 간다 손아귀로 아귀를 뜯으면서 생각한다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았나 입속이 화끈거린다 나에게도 분명 매운 세상이 지나간 것이다 비처럼 젖는 세상의 예사로운 일이여 어떤 것은 눅눅하여 얼룩 된 지 여러날이다 비둘기가 종종거리며 길바닥을 찍고 있다 자전거를 굴리며 소년이 천상병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시인은 죽어 거리를 남겼다 모든 확신은 증오로 사랑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생(生)의 후반이 우두커니 서 있다 별나지 않은 사람들의 별나지 않은 일에 귀 기울이는 저녁까지 비는 그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기를 써야 할 날은 오늘 같은 날이다 *시집/ 지독히 다행한/ 창비 다시 쓰는 사계..

한줄 詩 2021.08.31

이명 - 김연진

이명 - 김연진 귀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갔다 아름답다고 느꼈던 모든 소리는 방향이 없어졌다 소리의 혼돈 꽃피는 소리를 듣는다 피다의 소릿값은 봄 모든 무의미가 혼돈을 지나 의미가 되는 지점 나는 어느 봄, 목련이 피는 소리와 벚꽃이 지는 소리를 왜곡하며 듣는다 마치 내 목소리가 네 목소리인 것처럼 난청은 언제나 너에게 잠겨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 소리 없이 지는 파문을 따라 흐르는 나의 기울기 값은 너 귀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갔다 모든 소리는 딱딱하게 굳어 정지되었다 *시집/ 슬픔은 네 발로 걷는다/ 한티재 난독 - 김연진 신의 영역에 다녀온 적 있었다 첫 경험처럼 푸르지도 붉지도 않은 희미한 뒷골목 꽃같이 피어 있는 깃발 몇 장의 지폐가 신을 부른다 신은 휘파람을 타고 내려와 낯선 조상이 되..

한줄 詩 2021.08.30

날개 없는 나비들의 날갯짓

[2020 도쿄 패럴림픽]팔이 없는 수영 선수들 남자 접영 50m S5 결승 #패럴림픽 #butterfly youtu.be #난데없는 코로나로 일 년 미뤘다가 치러진 이번 올림픽은 단연 여자배구였다. 올림픽은 모든 국가가 참가할 수 있지만 기준 기록이란 것이 있어 그 기록을 넘어야만 자격이 주어진다. 구기 종목도 당연 지역 예선을 치러 통과한 국가만 참가할 수 있다. 여자배구가 아시아 예선을 통과한 것도 축하할 일인데 본선에서 강팀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8강, 4강에 진출한 것은 극적이면서 짜릿함을 느끼게 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그 기쁨이 배가된 것이다. 그 열기를 이어서 장애인 올림픽이 열렸다. 우연히 나비들의 날갯짓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사고로 두 팔을 잃은 장애인들의 수영 경기..

여덟 通 2021.08.30

단단하던 여름빛이 눈에 띄게 풀려서 - 안태현

단단하던 여름빛이 눈에 띄게 풀려서 - 안태현 어젯밤엔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가는 등 푸른 바다를 베고 잠들었다 너는 아프지 말라고 내 잠 곁에서 끝물처럼 우는 풀벌레들이 있었다 한껏 땀을 흘리고 나면 무너지는 기운과 새로 솟는 기운이 파김치처럼 한데 어울렸다 커다란 나무 그늘에 앉아 읽는 구름 한 장 나를 위해 메어둔 돛배 같고 내 손에 아직 남은 청춘의 빛 그것이 언제까지 유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여름 이후의 일은 알지 못하므로 한 뼘씩 짧아지는 빛을 보면 앞날을 타협하고 때론 구걸한다 *시집/ 최근에도 나는 사람이다/ 상상인 그늘 반 연두 반 - 안태현 바닥에서 연두 같은 술렁임이 일어 사랑하고 싶은 날도 있었다 그늘 반 연두 반 그러나 그곳에 누워 있으면 독백이 더 잘 들린..

한줄 詩 2021.08.29

젊은 이안소프의 슬픔 - 정경훈

젊은 이안소프의 슬픔 - 정경훈 ​ 손이 야하다는 사람이 음악을 한다 그런 사람이 기타 줄을 만진다 만지고 싶을 때만 만진다 욕구가 일이 되면 만사가 나른해진다 미술관을 가지 않고 공연장을 가지 않고 낭독회도 가지 않는다 야한 사람은 한 가지의 변태일 뿐이다 가지 않는 발은 다분해지고 손이 야하다는 사람은 손으로 살 길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발발했다가 정지했다고 고로 사념은 변기통으로 낙하할 뿐이다 궁핍의 길에서 자문을 한다 자문의 문은 볕이 들어오지 않는 슬픔의 소파 소파는 그저 누워 아집을 토로하는 초상이다 ​ 사람 눈이 여름인 것처럼, 야하다는 손이 할 일을 놓으면 여름은 여름이 아닌 것처럼 뜨거워진다 일련이 판이해진다 *시집/ 아름답고 우아하기 짝이 없는/ 문학의전당 그 핵 - 정경훈 긴장 풀으렴..

한줄 詩 2021.08.29

돌아 눕는 산 - 태백산맥 OST

#태백산맥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 목록에 올라 있는 작품이다. 책으로 영화로 모두 감동적이었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지만 그 감동의 여운은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 있다. 서편제와 함께 김수철이 만든 영화음악도 일품이다. 가수가 아닌 작곡가로 거의 정점에 있을 때 작품이다. 음악도 영화도 그대로인데 나만 훌쩍 그 시절을 벗어나 회상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살아 있어 고맙고 다행이다.

두줄 音 2021.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