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젊은 이안소프의 슬픔 - 정경훈

마루안 2021. 8. 29. 19:21

 

 

젊은 이안소프의 슬픔 - 정경훈


손이 야하다는 사람이 음악을 한다

그런 사람이 기타 줄을 만진다 만지고 싶을 때만 만진다 욕구가 일이 되면 만사가 나른해진다 미술관을 가지 않고 공연장을 가지 않고 낭독회도 가지 않는다 야한 사람은 한 가지의 변태일 뿐이다 가지 않는 발은 다분해지고 손이 야하다는 사람은 손으로 살 길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발발했다가 정지했다고 고로 사념은 변기통으로 낙하할 뿐이다 궁핍의 길에서 자문을 한다 자문의 문은 볕이 들어오지 않는 슬픔의 소파 소파는 그저 누워 아집을 토로하는 초상이다

사람 눈이 여름인 것처럼, 야하다는 손이 할 일을 놓으면 여름은 여름이 아닌 것처럼 뜨거워진다 일련이 판이해진다

 

 

*시집/ 아름답고 우아하기 짝이 없는/ 문학의전당

 

 

 

 

 

 

그 핵 - 정경훈

 

 

긴장 풀으렴

혀와 귀와 목과 쇄골과 손가락과 겨드랑이와 명치와 가슴과 젖꼭지와

.....

긴장 풀라니까?

배꼽과 골반과 척추와 날개뼈와 옆구리와 허벅지와 무릎과 오금과 발가락과 아킬레스건과 승모근

 

그어놓은 선은 무용지물이다 안일은 곧 무효다

그와 나는 빨강과 파랑으로 나뉘었다

통제는 없다 다만 긴장감은 곧 유효한 안과 밖의 사정이다

 

그러니까 꾸며보자면

비벼지면 황홀했고 먹어보면 죽을 듯이 소리를 질렀다 소리란 탄식 혹은 짧은 호흡이다

 

다리가 세 개면 편하겠다

싶어서 그를 사육하기로 마음먹었다

 

패턴으로 된 셔츠를 벗겨본다

둥글고 각진 곡선들이 보인다 커다란 근육과 잔잔하게 요동치는 핏줄에서

시큼하면서도 야무진 땀방울이 맺힌다

 

가죽 밸트를 푼다

심장 소리가 이렇게나 거대하고 높았던가

점점 커진다 나는 점점 머리부터 눌린다

 

바지를 내린다

눌리는 머리가 지진이 몰아치는 것처럼 그의 팬티를 흔들어댄다

손과 손이 불안해지고 어느새 손은 세 번째 다리를

애걸복걸하며 잡는다

 

스크류바를 입에 넣고

빨강보다 더한 빨강이 될 때까지 빨고 감고 돌린다

토막이 날 때까지

 

양쪽의 방울을 건드린다

옴짝달싹못하는 그는 진동처럼 죽어간다

그의 방울에는 소리가 없다

소리는 없지만 그는 분명 죽어간다

 

그를 삼킬 때가 왔다

사육의 주된 임무는 완전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

이제 그는 나를 위해 짖고 눕고 울어야 되는 것이다

 

바다가 육지를 덮친다

파도가 이곳을 점령한다

축축해지는 땅에서 물이 흐른다

어느 곳은 불안해지고 어느 곳은 몰락했다

유일하게

세 번째 다리만 단단한 뿌리의 힘을 자랑했다

 

그가 유언을 남긴다

터질 것 같다고

온몸이 클리토리스인 것처럼

정말 죽을 것 같다고 이제 진짜 죽을 거라고

살려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별말 없는 유언이다

 

그는 눈을 뜨고 시체가 되었다

또 한 사람이 떠나갈 거라 생각했지만

다 그렇지 않듯 떠나가지 않는 시체도 있다

내가 짊어질 일은 후자로 인한 죄책감과

그를 버리고 가는 당당함이다

 

세 번째 다리는 결국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無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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