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 여름의 끝에서 - 김보일

마루안 2021. 8. 31. 22:42

 

 

그 여름의 끝에서 - 김보일

 

 

아마도 흐렸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때 너희들의 윤곽이 어슴푸레해져

너희들의 그림자는 서로를 허락하며

즐겁게 넘나들기도 했지만

후박나무 그늘로 내리는

여름이 하도 성급했으므로

태양은 제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

분주히 잎새들을 둥글게 키우고

바람은 또 무엇을 기억해 내려는지

미루나무 밑동을 바삐 타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보아라

여름은 늘 최초의 여름이었으므로

바람은 늘 새벽으로부터 다시 불어 왔으므로

태양과 바람의 기억은 낡고

낡음으로 가득 찬 세상의 저녁에

새 이름을 부르러 너희들은 갔다

 

 

*시집/ 살구나무 빵집/ 문학과행동

 

 

 

 

 

 

별 - 김보일

 

 

목동이 별에 관한 지식을 늘어놓자, 스테파네트는 그래, 어쩜, 하면서 맞장구를 쳐 준다. 목동은 신이 나서 별에 관한 모든 지식을 꺼내 놓을 태세다.

 

소녀에게는

 

소년의 몸에서

 

우주를 꺼낼 만한 힘이

 

있다

 

 

 

 

# 김보일 시인은 1960년 서울 출생으로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017년 <문학과행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살구나무 빵집>이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