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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등 아래 - 김용태

영가등 아래 - 김용태 ​ 살아 마흔두 해, 떠나보낸 일곱 해 어느 한쪽 치우쳐 아리지 않은 적이 있겠느냐 산딸나무꽃 하얗게 뒹구는 해우소 아래 물기 머금은 한지 같은, 노모 위태로이 앉아 있다 어려부터 겁이 많아 울 밖 화장실 가는 것을 겁내하던 모습이 밟힌다며, 삭정이 같은 손 뻗어 극진히 등을 달았다 이젠 그만 죽어, 삼백 예순 날 하루 가슴에서 비워낸 적 없는 새끼를 만나고 싶다고 산새 울음 겹으로 쌓이는 산길 이십 리 모진 명줄처럼 늘어져 있는 밤길 더듬어 울고 갈, 허물어져 떠내려 갈 일만 남은 봄 밤 해우소 환히 밝힌 영가등 밑에 붓꽃 숨죽여 피고 있다 *시집/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오늘의문학사 붉은 귀향 - 김용태 -벌초를 하며 청사포(靑沙浦)의 망부가 그러했듯 꿈도 간절하면 전설이 되..

한줄 詩 2021.09.17

별자리를 보는 방법 - 고태관

별자리를 보는 방법 - 고태관 히말라야를 오르는 셰르파들은 들꽃 냄새로 길을 찾습니다 밤하늘에 매달린 흔들개비를 올려다보느라 멈춰섭니다 갸웃거리는 머리에 뭉뚝한 뿔이 자랐습니다 꽁무니 따라 쫑긋거리던 별이 미끄러져 내립니다 졸다가 깼다가 혀로 코를 적시며 온 길 눈 감고도 아는 길목에서는 입으로 목줄을 끌어당겼습니다 줄 감긴 자국을 핥으며 별똥별의 경로를 새깁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나눠 먹고 나란히 가벼워집니다 함부로 풀을 뜯지 않은 허기 젖은 코를 킁킁거려 갈림길에서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지구는 오른쪽으로 도나요 아니면 왼쪽 지상의 꼭대기에서는 소용없는 일 염소자리 아래 엎드린 길잡이는 나침반으로 떨립니다 점자로 박힌 마을 불빛이 다 꺼진 뒤에야 잠을 청하면 정수리 위에서 북극성이 희미해집니다 우리가 지나..

한줄 詩 2021.09.16

출생의 비밀 - 홍성식 시집

홍성식은 시인보다 기자로 익숙한 이름이다. 내가 오마이뉴스를 초기부터 봐 왔던 터라 그의 기자 활동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그는 원래부터 시인이었다. 그가 쓴 기사를 읽으면 문장 속에서 시인 기질 다분한 감성이 느껴진다. 실제 오마이뉴스 홍성식 기자 아이디에는 poet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 시집 날개에 실린 약력을 살펴 보자. 홍성식 시인은 부산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청춘의 한 시절을 보냈다. 그 경험이 일찌감치 동서 갈등의 그림자를 의식에서 털어내게 했다. 2005년 으로 등단했고, 시집 을 펴냈다. 몇 군데의 신문사를 옮겨 다니며 20년 가까이 기자로 일하고 있다. 마흔 살이던 2011년 20여 개 나라를 홀로 떠돌며 기억 속에 남을 '에뜨랑제의 삶' 10개월을 보내기도 했다. 약력에서 보듯 홍성..

네줄 冊 2021.09.15

반달의 화법 - 김지명

반달의 화법 - 김지명 맞바꾼 얼굴이 똑같은 반달은 서로를 잉여라고 했다 나이를 먹지 않는 생각이 앙상한 이야기를 둘둘 말고 있었다 그날 이후 쉰세 마리 양들은 고목 앞 양편으로 나뉘어 목례를 했다 생각해 주는 말투로 알람으로 목소리 저장해 둘까? 바람과 이파리 부딪쳐 쌈꾼처럼 말을 건네지만 오래 같이 먹는 동네 공기에 서로는 젖고 서로는 젖지 않았다 나는 달을 감아 당신을 풀고 당신은 달을 풀어 나를 감는 상현은 머나먼 진술로 기밀을 담보했다 힘들어를 괜찮아로 발음하는 자간(字間)의 웃음 밤낮 인생은 그래 그래? 화법 하던 말을 끄고 잠든 마을 보며 볼 게 참 많다? 세상에서 빌린 말을 던지며 별똥별이 사라졌다 먹장구름이 반달을 뱉어 놓으면 편파는 하현에서 미끄러졌다 *시집/ 다들 컹컹 웃음을 짖었다/..

한줄 詩 2021.09.15

천박한 사랑에 관하여 - 서윤후

천박한 사랑에 관하여 - 서윤후 아내는 내게 오라고 하였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그것이 침대 귀퉁이만 돌아도 갈 수 있는 일인지, 맨발로 유리 조각을 지나야 하는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목소리만 남았고 나는 숲에 불을 지른 것 같다 불이 끝나는 쪽으로 향하기 위하여 마주댄 것이 많아 타오르기가 쉬웠다 그 숲에서 아내는 물을 심어둔 것 같다 괘종시계 앞에서 불확실한 것과 손에 쥔 영수증 앞에서 불투명한 것이 우리를 각각 다른 곳으로 불러냈다 사랑을 멀리하라는 신의 계시였고 거역했지만 나와 아내는 거의 동시에 제 발로 사랑을 빠져나왔다 살려달라는 말을 둘째 아이처럼 낳고 아픈 사람에게는 가고 싶거든, 첫차든 막차든 빨리 가야만 한다는 이 심정을 해치우고 싶으니까, 그래도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야채죽의 당근을 ..

한줄 詩 2021.09.12

바라보기 - 진창윤

바라보기 - 진창윤 바스락거린다, 발을 떼어내지 못한 만큼 간절하다 질긴 저녁이 밀려오면 사람들은 저마다 침대로 돌아가고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 밤 아닌 밤, 혼자 먹는 사료는 차다 늦은 밥을 먹으며, 오독오독 읽는 세상, 달랑 하나뿐인 접시 위에 놓인 발톱을 혀로 다듬는다, 아직 식지 않은 야생을 식힌다 접시가 맑아지면 차가운 방바닥의 끝에서 닳아버린 장판을 이빨로 핥는다 똑바 바라본 적 없는 내 눈동자를 일직선으로 바라보는 저 눈빛,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길들여진다 길게 바라보면 방문이 열린다 손대지 않고도 무너뜨릴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시집/ 달 칼라 현상소/ 여우난골 달 칼라 현상소 - 진창윤 해가 지면 남자는 달을 줍는다 오래전부터 혼자 사는 남자는 사진 박는 것이 직업이다 가로등 아래 골..

한줄 詩 2021.09.12

무반주행성으로 나는 - 이자규

무반주행성으로 나는 - 이자규 담벼락에 기대 그를 기다렸다 벽이 된 구조와 생태가 들려왔고 잠시 멍해졌고 내 속의 풍화작용을 메모하다 눈이 젖어오고 돌 속으로 들었다 함박눈으로 말한다 그는 척추를 세우라 한다 그는 15도를 연주하다 파도를 잡아 앉힌다 퇴적층에 리아스식 해변을 왔다 파닥이는 물고기를 음각하는 고요한 길목이다 하얀 돌을 으깨 먹는 바다를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가엽고도 가여운 그가 중풍 든 노모를 업고 들어가 물장구 치는 무늬는 돌의 어느 쪽인지 제 안의 썩고 있는 지느러미의 보검이 내 등에 꽂히는 화살 아니었을까 그는 오지 않았고 기다림의 이명은 돌의 흡반으로 갔다 함박눈이 피려는 모과꽃눈 나무에 넣어주더라도 눈물은 흘러 요철식의 공법으로 그가 쌓이고 하얗게 숨은 담벼락이라는 것 할 말 ..

한줄 詩 2021.09.12

아프게 읽지 못했으니 문맹입니다 - 이은심 시집

예전에 어머니가 좋아하는 드라마는 전원일기였다. 가물가물하지만 전원일기 방영 시간이 화요일 저녁 8시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머니는 노안으로 눈이 침침하다면서도 화요일이면 열일을 제쳐 두고 그 프로를 참 열심히 봤다. 어머니는 최불암과 김혜자가 진짜 부부인 줄 알고 사셨다. 극중 김회장 부인이자 용식 엄니의 이름은 이은심이다. 그 집에 전화기를 놓던 날 모든 식구가 개통 기념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하느라 야단법석이다. 용식 엄니만 전화 걸 데가 없다. 이은심 여사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 이불 속에서 전화기에 대고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돌아가신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당신 딸 은심이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어머니는 이 장면을 보면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내 어머니도 형제가 많지 않아 달랑 ..

네줄 冊 2021.09.12

백발의 고시촌 - 르포

https://news.v.daum.net/v/20210912080003943 '2평 방 안은 감옥 독방'..무덤 전 마지막 집은 고시촌 [편집자주] 44만513명. 지난해 늘어난 65세 인구 숫자다. 한해 사이 의정부시(인구 46만여 명) 한 곳을 채울만큼 노인 인구가 늘었다. 노령인구 증가폭은 계속 커져 2028년에는 한 해 52만8412 명에 달 news.v.daum.net "나는 돌연변이, 쓰레기봉투에 짐을 챙겨 고시원을 떠돈다" [편집자주] 44만513명. 지난해 늘어난 65세 인구 숫자다. 한해 사이 의정부시(인구 46만여 명) 한 곳을 채울만큼 노인 인구가 늘었다. 노령인구 증가폭은 계속 커져 2028년에는 한 해 52만8412 명에 달 news.v.daum.net 치솟는 집값·임대료..돈 ..

열줄 哀 2021.09.12

노량진 사는 행복한 사내 - 홍성식

노량진 사는 행복한 사내 - 홍성식 강에서 바닷고기의 비린내가 온다 어둠 깔리는 수산시장이 생선의 배를 갈라 새끼의 배를 불리는 사내들 악다구니로 끓는다 보기에도 현란한 사시미칼 서슬 아래 펄떡이는 생명 내장 쏟으며 쓰러지지만 서른아홉 대머리 박씨에겐 죄가 없고 죄 없으니 은나라 주왕도 안 무섭다 허풍과 농지거리 섞어 서푼짜리 생 헐값 떨이에 거래하는 고무장화의 거친 사내들 파르르 떨어대는 넙치 아가미에선 '과르니에리 델 제수' 소리가 난다 그래, 오늘만 같다면 이번 달 딸아이 레슨비는 걱정 턴다 새까만 박씨 낯짝 전갱이 굵은 비늘이 빛난다. *시집/ 출생의 비밀/ 도서출판 b 대게잡이 선원 철구 씨 - 홍성식 당 45세 철구 씨는 우즈베키스탄으로 간다 여기서 구하지 못한 아내 거기라고 쉬이 찾아질까 성..

한줄 詩 2021.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