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이명 - 김연진

마루안 2021. 8. 30. 19:26

 

 

이명 - 김연진

 

 

귀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갔다

아름답다고 느꼈던 모든 소리는 방향이 없어졌다

소리의 혼돈

 

꽃피는 소리를 듣는다

피다의 소릿값은 봄

모든 무의미가 혼돈을 지나 의미가 되는 지점

 

나는 어느 봄,

목련이 피는 소리와 벚꽃이 지는 소리를 왜곡하며 듣는다

마치 내 목소리가 네 목소리인 것처럼

 

난청은 언제나 너에게 잠겨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

소리 없이 지는 파문을 따라 흐르는

나의 기울기 값은 너

 

귀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갔다

 

모든 소리는 딱딱하게 굳어 정지되었다

 

 

*시집/ 슬픔은 네 발로 걷는다/ 한티재

 

 

 

 

 

 

난독 - 김연진

 

 

신의 영역에 다녀온 적 있었다

첫 경험처럼

푸르지도 붉지도 않은 희미한 뒷골목

꽃같이 피어 있는 깃발

 

몇 장의 지폐가 신을 부른다

신은 휘파람을 타고 내려와 낯선 조상이 되었다가

젊은 날에 죽은 원혼이 되었다가

다시 내 앞에 앉은 앳된 보살이 되었다

 

가을 햇살이 쏟아지던 어느 계에서

나는 목숨 줄을 놓고 있었는지 모른다

당신처럼 사람 곁에 머물고 싶어서

 

꿈인 듯 분열인 듯 이상한 슬픔이 흘렀다

물에 잠긴 심장의 항목처럼 쏟아져 내리는 비의

 

사람의 언어가 어려운 나는, 생은 왜 이따위인가 묻는다

 

 

 

 

# 김연진 시인은 경북 영양 출생으로 2010년 <영남문학>으로 등단했다. 샘문학 동인, 안동작가회의 회원이며 현재 이육사문학관 해설사로 근무하고 있다. <슬픔은 네 발로 걷는다>가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