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 김연진
귀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갔다
아름답다고 느꼈던 모든 소리는 방향이 없어졌다
소리의 혼돈
꽃피는 소리를 듣는다
피다의 소릿값은 봄
모든 무의미가 혼돈을 지나 의미가 되는 지점
나는 어느 봄,
목련이 피는 소리와 벚꽃이 지는 소리를 왜곡하며 듣는다
마치 내 목소리가 네 목소리인 것처럼
난청은 언제나 너에게 잠겨 있을 때 일어나는 현상
소리 없이 지는 파문을 따라 흐르는
나의 기울기 값은 너
귀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갔다
모든 소리는 딱딱하게 굳어 정지되었다
*시집/ 슬픔은 네 발로 걷는다/ 한티재
난독 - 김연진
신의 영역에 다녀온 적 있었다
첫 경험처럼
푸르지도 붉지도 않은 희미한 뒷골목
꽃같이 피어 있는 깃발
몇 장의 지폐가 신을 부른다
신은 휘파람을 타고 내려와 낯선 조상이 되었다가
젊은 날에 죽은 원혼이 되었다가
다시 내 앞에 앉은 앳된 보살이 되었다
가을 햇살이 쏟아지던 어느 계에서
나는 목숨 줄을 놓고 있었는지 모른다
당신처럼 사람 곁에 머물고 싶어서
꿈인 듯 분열인 듯 이상한 슬픔이 흘렀다
물에 잠긴 심장의 항목처럼 쏟아져 내리는 비의
사람의 언어가 어려운 나는, 생은 왜 이따위인가 묻는다
# 김연진 시인은 경북 영양 출생으로 2010년 <영남문학>으로 등단했다. 샘문학 동인, 안동작가회의 회원이며 현재 이육사문학관 해설사로 근무하고 있다. <슬픔은 네 발로 걷는다>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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