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무반주행성으로 나는 - 이자규

마루안 2021. 9. 12. 21:29

 

 

무반주행성으로 나는 - 이자규

 

 

담벼락에 기대 그를 기다렸다

벽이 된 구조와 생태가 들려왔고 잠시 멍해졌고 내 속의 풍화작용을 메모하다 눈이 젖어오고 돌 속으로 들었다

함박눈으로 말한다 그는 척추를 세우라 한다 그는

15도를 연주하다 파도를 잡아 앉힌다 퇴적층에 리아스식 해변을 왔다 파닥이는 물고기를 음각하는 고요한 길목이다

 

하얀 돌을 으깨 먹는 바다를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가엽고도 가여운 그가 중풍 든 노모를 업고 들어가 물장구 치는 무늬는 돌의 어느 쪽인지 제 안의 썩고 있는 지느러미의 보검이 내 등에 꽂히는 화살 아니었을까

그는 오지 않았고 기다림의 이명은 돌의 흡반으로 갔다

 

함박눈이 피려는 모과꽃눈 나무에 넣어주더라도 눈물은 흘러

 

요철식의 공법으로 그가 쌓이고 하얗게 숨은 담벼락이라는 것 할 말 많은 실어증이다 무반주로 들려주는 행성이다

 

 

*시집/ 아득한 바다, 한때/ 학이사

 

 

 

 

 

 

유리벽 에세이 - 이자규


내가 강을 말하면 그는 산을 말한다 그가 창문을 열면 나는 긴팔 옷을 걸쳤다

침묵과 침묵은 서로 꼬리 흔들다 소원해졌을 때 그가 색소폰을 불고 나면 나는 유행가를 들었다

무인도와 협곡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 그는 나 내가 그여서 한 접시의 푸성귀와 생갈치에 뿌리는 양념소금처럼 등 돌리며 다시 스쳤다

폰에 저장된 그의 관악기 부는 서양음악 두 귀를 막다가 폰 휴지통으로 보낸 뒤 아우성치는 한 여운을 읽고 있다

끼니 없는 추억을 들으며 내가 냄비 소리 냈을 때 그는 이부자리를 깔았다

유리벽의 안과 밖은 서로를 견디고 견뎌낸 온도 차이일 뿐 아무 일도 아닌 듯 그가 웃었을 때 나는 눈물이 났다

못 위에 있는 새를 보며 그는 오고 있다 하고 나는 가고 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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