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영가등 아래 - 김용태

마루안 2021. 9. 17. 19:16

 

 

영가등 아래 - 김용태


살아 마흔두 해, 떠나보낸 일곱 해
어느 한쪽 치우쳐 아리지 않은 적이 있겠느냐
산딸나무꽃 하얗게 뒹구는 해우소 아래
물기 머금은 한지 같은, 노모
위태로이 앉아 있다
어려부터 겁이 많아
울 밖 화장실 가는 것을 겁내하던 모습이 밟힌다며,
삭정이 같은 손 뻗어 극진히 등을 달았다
이젠 그만 죽어,
삼백 예순 날 하루 가슴에서 비워낸 적 없는
새끼를 만나고 싶다고
산새 울음 겹으로 쌓이는 산길 이십 리
모진 명줄처럼 늘어져 있는 밤길 더듬어 울고 갈,

허물어져 떠내려 갈 일만 남은
봄 밤 해우소 환히 밝힌 영가등 밑에
붓꽃 숨죽여 피고 있다

 

 

*시집/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오늘의문학사

 

 

 

 

 

 

붉은 귀향 - 김용태
-벌초를 하며


청사포(靑沙浦)의 망부가 그러했듯
꿈도 간절하면 전설이 되는 걸까

팔십여 성상,
할머니께서는 살아오며 가졌던 기억들을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이름, 가족의 얼개마저도 부정하시고
다만 그만의 망부가를 부르시며
먼 세상을 사셨다
토씨 하나 흐트러짐 없던 거룩한 도하가(渡河歌)

무엇인가를 들쳐 업고
한 사내가 노을을 등지고 걸어 들어오지 않았겠냐
객사한 남편의 주검이 멍석에 싸여
뒤꼍 처마 아래 뉘여지고
누군가는 굴뚝에 서둘러 삼태기를 씌웠지
이 고장 풍습이라면서 말이야, 정들었던 사람
마지막 가는 길에 더운밥이라도 먹여 보내야 할 것 같아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눈물바람을 하다가 그만
무명치마에 불이 붙고
다시 집 전체에 불길이 번져
소리소리 지르다 깨어 보니 허망한 꿈이더라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길이 없어
그저 징용 끌려간 날에 메를 지어 올리는 것이라며

모든 것들 환하게 붉어져 오는
할머니의 영토
아직도 누워 계신 그 오른쪽이 시린 것일까
봉분 한쪽 잔디만 무성히 자라

 

 

 

 

# 김용태 시인 충남 공주 출생으로 2016년 <문학사랑> 신인작품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대전 문인협회 회원, 2021년 대전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가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