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아프게 읽지 못했으니 문맹입니다 - 이은심 시집

마루안 2021. 9. 12. 21:23

 

 

 

예전에 어머니가 좋아하는 드라마는 전원일기였다. 가물가물하지만 전원일기 방영 시간이 화요일 저녁 8시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머니는 노안으로 눈이 침침하다면서도 화요일이면 열일을 제쳐 두고 그 프로를 참 열심히 봤다.

 

어머니는 최불암과 김혜자가 진짜 부부인 줄 알고 사셨다. 극중 김회장 부인이자 용식 엄니의 이름은 이은심이다. 그 집에 전화기를 놓던 날 모든 식구가 개통 기념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하느라 야단법석이다. 용식 엄니만 전화 걸 데가 없다.

 

이은심 여사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 이불 속에서 전화기에 대고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돌아가신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당신 딸 은심이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어머니는 이 장면을 보면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내 어머니도 형제가 많지 않아 달랑 외삼촌 하나와 이모 하나가 전부였다. 배곯지 말라고 부잣집에 시집 보내면서도 내 딸 농사 짓느라 골병들까 걱정이라며 외할머니는 평펑 울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전원일기 장면에서 돌아가신 친정 엄마가 생각났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시집을 읽으며 어머니가 생각났다. 무던히도 속을 썩혔고 당신 가슴에 못을 박아 늘 눈물 짓게 만들었던 나였다. 지금에서야 통곡하고 싶을 만큼 후회스럽지만 먼 길 떠난 후다. 속죄 하는 마음으로 산다지만 돌이킬 수 없다.

 

어머니는 글을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다. 겨우 이름 석 자 정도 더듬더듬 읽는 정도였다. 평생 연필은 잡아 본 적 없고 오직 호미와 부엌칼을 잡고 황소처럼 일만 하다 돌아가셨다. 외도와 노름으로 그 많던 살림 다 말아 먹고 일찍 떠난 남편 때문에 억척스럽게 살아야했다.

 

어머니는 저녁 노을을 참 좋아했다. 부끄럼은 많고 자존심은 강했다. 나는 외모뿐 아니라 성격과 식성까지 어머니를 빼닮았다. 어쩌면 내가 삼겹살에 소주보다 시를 열심히 읽는 것도 감성적인 어미의 유전자를 물려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은심 시인은 1950년 출생이니 칠순이 넘었다. 늦은 나이에 등단을 해서 이번이 세 번째 시집이다. 오래된 유행가 가락이 떠오르는 향수에 젖게 하지만 구닥다리 냄새가 나지 않는다. 통속적일 수 있는 슬픔을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다듬을 줄 안다.

 

 

우주의 질량은 변함이 없다니 먼지의 총량을 쓰윽 닦아내는 무릎의 수고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울음도 가만 두면 썩을 것인가

번번이 옳은 청소도구와 올바른 물걸레가 첫눈 같은 얼굴로 쓸어내는 오고 또 오는 불화의 장르들

내 지옥도 조금씩 버리면 덜 아팠을지 몰라

 

*시/ 오고 또 오는/ 일부

 

 

시집 한 권이 몽땅 필사하고 싶을 만큼 마음을 움직이는 절창으로 가득하다. 어느 한 편 처지는 시가 없다. 시집 읽고 가능하면 후기를 안 남기거나 짧게 쓰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시집은 구구절절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긴 여운과 함께 공감이 가는 보석 같은 시집을 읽은 탓이다. 

 

 

내 슬픔에 수저를 얹고 - 이은심


끼니때마다 호명되는 냄비가 덜컹덜컹 우는 것은 맞지 않는 뚜껑 때문인데
간처럼 졸아붙는 삼중바닥이 되지 못한 까닭인데 이를 테면

한술 밥에 배부르다는 착각이
한술 밥에 배불리려는 억지가 시궁쥐에게 갉아 먹히는 것인데

잊을 만하면 입속의 차가운 말들을 불태우고
그때 내 슬픔에 수저를 얹고 밥 먹어둔다는 말은 얼마나 고픈 말이었나

숙식제공과 월수입 보장의 한복판에서 몇 개의 뺨을 적시느라 다 써버린 눈물이 배불러오는 공복을 허겁지겁 퍼먹던 그때 밥이 밥을 굶기던 그때

꺼질 듯 말 듯한 신화 그것이 연민을 불살라먹던 불씨라는 걸
탈 듯 말 듯한 연민 그것이 불씨를 익혀먹던 신화라는 걸

아름다운 불구경을 건너면 뿌리내린 공복에게 젖 물리는 안부조차 누군가에게 먹히는 밥이어서 쉽게 식는 수저에 들러붙는 파리 떼
조롱은 뒷모습으로 웃고

약이 바짝 오른 끼니 하나가 밥 얻어먹는 사람을 시커멓게 바라보던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