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라보기 - 진창윤

마루안 2021. 9. 12. 21:39

 

 

바라보기 - 진창윤


바스락거린다,


발을 떼어내지 못한 만큼 간절하다
질긴 저녁이 밀려오면 사람들은 저마다 침대로 돌아가고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

밤 아닌 밤, 혼자 먹는 사료는 차다


늦은 밥을 먹으며, 오독오독 읽는 세상,

달랑 하나뿐인 접시 위에 놓인 발톱을 혀로 다듬는다, 아직 식지 않은 야생을 식힌다

 

접시가 맑아지면
차가운 방바닥의 끝에서 닳아버린 장판을 이빨로 핥는다

똑바  바라본 적 없는 내 눈동자를 일직선으로 바라보는 저 눈빛,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길들여진다


길게 바라보면 방문이 열린다
손대지 않고도 무너뜨릴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시집/ 달 칼라 현상소/ 여우난골

 

 

 

 

 


달 칼라 현상소 - 진창윤


해가 지면 남자는 달을 줍는다
오래전부터 혼자 사는 남자는
사진 박는 것이 직업이다
가로등 아래 골판지 달 맥주병 달
자전거에 싣고 온 달들을 둘둘 말아
마루에서 안방까지 차곡차곡 쌓았다
월식의 밤, 열일곱 살 딸이 집을 나가자
달 칼라 현상소 간판 붙이고 사진관을 열었다
달이라는 말과 현상한다는 말이 좋았다
한 장의 사진에 밤하늘을 박아 팔고 싶어
달을 표적 삼아 카메라를 들이댄다
인화지에 찍혀 나오는 사진 한 장에서
달의 얼굴들을 아랫목에 말린다
디지털로 바뀐 지가 언제인데
코닥필름 회사 망한 지가 언제인데
아날로그 필름만을 고집하는 달 칼라 현상소 남자
자꾸만 얼굴을 바꾸는 달을 좇는다
그의 앞마당에 쌓인 폐품들이
달의 얼굴로 처마에 닿아 간다
더 벗을 것도 없는 달, 고무대야 속에 담겨 있다
사진관 남자는 껍질뿐인 까만 얼굴
달빛에 물들라고 단단하게 비비고 있다

 

 

 

 

# 진창윤 시인은 1964년 전북 군산 출생으로 우석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달 칼라 현상소>가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