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 피재현 어제는 늦은 가을비가 종일 내리고 밤에는 바람도 거세게 불어 나는 조금 쓸쓸했다 바람이 동네 골목이며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가면서 내지르는 소리는 이별한 사람들의 부음 같아서 그냥 나도 모르게 허공을 바라보고 앉아 그 사람의 명복을 빌어 보게 되는 것이다 바람은 아침까지도 제법 불었는지 문밖에 나서는 걸음이 어설펐는데 나뭇잎들이 하룻밤 사이에 다 떨어지고 빈 가지들이 나보다 더 쓸쓸하게 서 있었다 그중 마로니에는 큰 잎들로 가려졌던 앙크란 맨몸을 다 드러내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는데 나도 황급히 눈을 돌리고야 말았다 주인 객 할 것 없이 사람만 보면 무턱대고 짖어대던 앞집 개도 딴 데로 돌아앉아 있었다 가을인가 싶더니 단풍 구경 한번 못 하고 겨울이 왔구나 나목들이 긴 겨울을 저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