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不眠) - 김용태
언제부터였던가
도무지 가둘 수 없는 마음,
문득 잠 깨 더듬어 보니
이 밤 어디를 떠도는 것인지
그리도 일렀건만
혹여
절집 돌담 아래 쪼그리고 앉아
눈 맞추고 있는지,
꼬옥 끌어안고 꿈같은 잠이나
자고 있는지
예전의 일처럼
그 사랑에 버림받고
길모퉁이 돌아 울며 취해 있는지
아니면
이도 저도 지쳐, 그만
통도사 홍매화라도 보러 갔는지
누옥에 젖은 자리다만
늑골 안쪽
훤히 드러난 네 자리
스미듯 들어와, 그만
나를 재워다오
다시 새벽이다
*시집/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오늘의문학사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 김용태
살다 보면 때로는 잊는 것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때가 있나니
하물며 그것이 사랑의 일이라면,
사랑도 더러는 죄를 짓는 일이거니
당신과 나
철 늦은 사랑을 해서
내 떠나 온 어느 한 날, 당신
달 아래 들려오는 산짐승 소리가
애타게 기다리는 내 목소리인 거 같아
그만 환하게 달아올랐다던,
이젠 그도 지쳐
신의 심판이 없는 곳
물과 뭍의 아득한 경계에서
황도 등에 탄 유로페를 꿈꾸다가
절해 외딴 섬에 떠밀려
외로이 등대만 천날만날 바라보다
십일월의 하늘 아래
소멸이되 소멸이지 않음을 꿈꾼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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