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下流)에서 - 김해동
이부자락을 확 밀치자
새벽 으스름이 달려 나왔다
산의 어깨를 무등 타고
먹빛으로 덮이는 낮은 풍경들
텐트 속에서도 사랑은 집을 짓는다
거칠게 서 있는 도로 표지판 옆에
가을국화는 기꺼이 고개 숙이고
선회하는 물살 따라 모여드는
여름의 잔해들
보고도 못 본 척
집채만한 바위를 받치고 있는
주먹 돌 하나
그렇게 어디를 꼭 받쳐 들고
매년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우리들 삶이 처절하게 되지는 않기를
간절하게 파인 계곡 속으로 맴도는
너무 일찍 떨어진 나뭇잎 하나
*시집/ 칼을 갈아 주는 남자/ 순수문학
낙엽 - 김해동
숯불처럼 꺼져 가는 밤
거나하게 타오르던 열정
불꽃 속에 던져 버리고
이슬에 취한 몸 바람에 싣고
메마른 길을 나서야 한다
지난 세월의 그리움만 안고 가기에는
너무 그리워
빛 바랜 사연들도 함께
처음 가는 길을 간다
삶이란
시간이란 열차를 타고
이미지에 맞는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
바람이 먼저 가을 강을 건너간 뒤
이제 서로의 안부는 묻지 않기로 했다
실핏줄처럼 엉킨 붉은 잎맥을 따라
흐린 별빛이 내려앉고
늑골같이 휘어진 그늘을 지우자
둥근 보름달이 떠 올랐다
노오란 은행잎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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