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원액, 그 치명적인 독 - 이덕규 빛의 원액, 그 치명적인 독 - 이덕규 순천 교도소 쪽문이 열리고 그가 밝은 빛을 향해 걸어나왔을 때, 순간 완강한 햇살오라기들이 다시 그의 발목을 묶었다 한때 빛을 탕진해버린 희망의 범법자로서 굶주린 시궁쥐처럼 어슬렁거리다가 마지막으로 걸려든 것 또한 느닷없는 헤드라이트 .. 한줄 詩 2015.01.28
소금사막에 뜨는 별 - 이은규 소금사막에 뜨는 별 - 이은규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다 꿈꿔야 할 문장은 잠언이 아닌, 모래바람을 향해 눈뜰 수 있는 한 줄 선언이어야 할 것 사막 쪽으로 비껴 부는 바람 꿈으로도 꿈꾸던 달의 계곡 지나 이국의 마을 바다에서 솟아오른 사막이 있다 당신은 물을까, 왜 소금사.. 한줄 詩 2015.01.27
상처가 없으면 그리움도 없으리 - 김명인 상처가 없으면 그리움도 없으리 - 김명인 철썩이며 부서지는 파도의 실패들 감았다 풀었다 되감는 이것을 놀이라 할까? 태곳적부터 펼쳐놓은 실마리니 파도는 써버릴 무료 무진장 남아 있다 넘볼 수 없는 해발의 아득한 넓이 푸르둥둥한 걸신들이 저녁을 끌고 온다 가장 낮은 현을 건드.. 한줄 詩 2015.01.27
귀를 씻다 - 조인선 귀를 씻다 - 조인선 좁은 접시에 생선 살 바르듯 이력서 한 칸 한 줄에 적어나가면 고작해야 몇 줄인 생이 새로운 건 그만큼 단순하다는 것이다 몇 년의 행적이 한 줄로 줄어드는 게 덧없는 게 아니라 순간의 모습이 빈칸에 달라붙는 게 간절함이 아니라 생의 전부마저 한 장에 여백을 주.. 한줄 詩 2015.01.27
불편한 죽음 - 이성목 불편한 죽음 - 이성목 추운 날 땔감으로 쓸까하여 공사장 폐목자재를 얻어다 부렸더니 온통 못투성이다 하필이면 나무에 빠져 죽었을까 죽은 못을 수습하는 동안 나무의 꺼칠한 잔등에 긁힌 자국이 소금쟁이 같다 죽은 것들을 위하여 겹겹의 나이테를 다 퍼낼 수 없어 아궁이 밑불을 뒤.. 한줄 詩 2015.01.27
산에 사는 날에 - 조오현 산에 사는 날에 - 조오현 나이는 뉘엿뉘엿한 해가 되었고 생각도 구부러진 등골뼈로 다 드러났으니 오늘은 젖비듬히 선 등걸을 짚어 본다 그제는 한천사 한천스님을 찾아가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 보았다 말로는 말 다할 수 없으니 운판 한번 쳐보라, 했다. 이제는 정말이지 산에 .. 한줄 詩 2015.01.26
연명치료 중단을 告함 - 김연종 연명치료 중단을 告함 - 김연종 나는 죽음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담보로 삶의 고통을 덜어내고자 함도 아니다 그저 마지막 길을 당당하게 걷고자 함이다 이제 모니터로는 남은 생을 기록할 수 없으니 내 몸에 부착된 고통의 계기판을 제거하고 가장 편안한 단추의 상복을 부탁.. 한줄 詩 2015.01.24
내리막에서 그렇다 - 조숙 내리막에서 그렇다 - 조숙 슬픈 길이 있다 그곳에 도착하면 시간은 토막 나고 공간도 머나먼 곳으로 사라져서 부드러운 슬픔이 밀려들어 온다 공업탑 로터리에서 달동 사거리 내리막이 그렇다 울주군청 사거리에서 군부대쪽 내리막이 그렇다 그 길에 멈춰 서던 시간이 멈추는 열차에 올.. 한줄 詩 2015.01.23
가시나무 - 천양희 가시나무 - 천양희 누가 내 속에 가시나무를 심어놓았다 그 위를 말벌이 날아다닌다 몸 어딘가, 쏘인 듯 아프다 생이 벌겋게 부어오른다. 잉잉거린다 이건 지독한 노역이다 나는 놀라서 멈칫거린다 지상에서 생긴 일을 나는 많이 몰랐다 모르다니! 이젠 가시밭길이 끔찍해졌다 이 길, 지.. 한줄 詩 2015.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