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시나무 - 천양희

마루안 2015. 1. 22. 21:25



가시나무 - 천양희



누가 내 속에 가시나무를 심어놓았다
그 위를 말벌이 날아다닌다
몸 어딘가, 쏘인 듯 아프다
생이 벌겋게 부어오른다. 잉잉거린다
이건 지독한 노역이다
나는 놀라서 멈칫거린다
지상에서 생긴 일을 나는 많이 몰랐다
모르다니! 이젠 가시밭길이 끔찍해졌다
이 길, 지나가면 다시는 안 돌아오리라
돌아가지 않으리라
가시나무에 기대 다짐하는 나여
이게 오늘 나의 희망이니
가시나무는 얼마나 많은 가시를
감추고 있어서 가시나무인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나를
감추고 있어서 나인가
가시나무는 가시가 있고
나에게는 가시나무가 있다.



*시집, 마음의 수수밭, 창작과비평








세상을 돌리는 술 한잔 - 천양희



포도주를 들다 생각해본다
나는 너무 썩었고 오래 썩었다
발효된 내 거대한 心筒(심통)에
묵은 찌꺼기 누추하다
나는 속썩은 인간으로서 냄새를 피웠고
말 대신 개 거품을 물었다
몸속 어디에
포도송이 꽉찬 포도밭이 있는지
넝쿨이 굽은 뼈처럼 뻗어나온다
마음의 서쪽, 붉게 칠한 노을 어룽거려
질끔 눈물도 나온다
이 머리통, 나도 생각하는 사람이라
여기, 어디에 道界(도계)는 있는지
술 한잔 돌리면서
내가 귀의한 세상에게
할 말이 있다면
내가 세상을 술잔처럼 돌리고 싶다는 것이다
한잔의 순환을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다
포도주를 들다 생각해본다
나는 너무 썩었고 오래 썩었다.






# 몇 줄의 싯구를 읽다 가슴이 철렁한다. 나는 얼마나 많은 가시를 감추고 있어서 나인가. 이 길 지나가면 다시는 안 돌아오리라.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았던 시인의 아픔이 절로 묻어난다. 그러고 보니 저 구절이 바로 나의 이야기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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