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불편한 죽음 - 이성목

마루안 2015. 1. 27. 07:48



불편한 죽음 - 이성목



추운 날 땔감으로 쓸까하여
공사장 폐목자재를 얻어다 부렸더니 온통 못투성이다
하필이면 나무에 빠져 죽었을까
죽은 못을 수습하는 동안
나무의 꺼칠한 잔등에 긁힌 자국이 소금쟁이 같다
죽은 것들을 위하여 겹겹의 나이테를 다 퍼낼 수 없어
아궁이 밑불을 뒤적거리며
퉁퉁 불어 저절로 떠오르기를 기다려도 보았지만
바닥은 개흙, 못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죽음과 침묵 사이엔 얼마나 두터운 합의가 있었을까
나무판자를 덮고 잠들었던 노숙자는
죽은 지 열흘 만에 말라비틀어진 몸을 삶에서 빼냈다
못대가리를 장도리 끝에 걸어 당겼더니
쇳소리를 내며 합판을 빠져나오는
잔뜩 꼬부라져 죽은 못은 죽어서도 쭉 뻗지 못하였다



*이성목 시집, 노끈, 애지








첫눈 - 이성목



팔순의 할머니를 아기처럼 무릎에 올려 앉히고 예순의 자원봉사 할머니가 흰밥 한 숟가락 퍼 올려 입에 댄다. 자아, 드세요. 입술만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다 마는 입맛에게 왜 안 드세요? 말하고 한 숟가락 먹어보고, 맛있어요! 말하고 한 숟가락 먹어보고, 귀가 먼저 먹어서 먹을 것을 듣지 못하는 팔순의 할머니 귀를 열어 옳지! 옳지! 한 숟가락 넣어주고 또 떠 넣어주고 예순의 할머니가 어이쿠 벌써 다 드셨네! 앞섶에 묻은 밥알을 툴툴 털어내자 밥상이 어느듯 새하얗다.






# 고단한 삶과 소멸에 대해 이렇게 절묘한 비유로 노래한 시가 있을까. 곱씹으며 읽다 보면 시인이 참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좋은 시를 읽은 겨울밤이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