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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 한창훈

간만에 꾸밈없이 날것으로 감동을 준 산문을 읽었다. 흔히들 산문 하면 온갖 미사여구 섞어서 자신의 삶을 꾸미기 바쁜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시를 좋아해서 특히 시인들의 산문을 자주 읽는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틈틈히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산문집은 울림이 없는 글이다. 그런 산문으로 독자를 끌어들일 생각이었다면 구멍가게 아저씨가 속임수로 동네 아이들 코묻은 돈을 후리는 것과 진배 없다. 좀 이름 있다는 시인들이 출판사와 쿵짝을 맞춰 산문집을 쏟아낸다. 호갱이 휴대폰 가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창한 제목을 달았으나 감동이 없는 글은 공허하다. 그러고도 시인이란다. 안 팔리더라도 그냥 시나 쓰시지, 그러면 적어도 쪽은 안 팔리지 않겠는가. 시가 안 읽히는 것도 글은 못 쓰면서..

네줄 冊 2018.01.15

미안하구나 내 추억아 - 윤석산

미안하구나 내 추억아 - 윤석산 시위를 떠난 우리의 젊음은 어둠의 과녁을 관통한 채 아직도 부르르 떨고 있구나. 떨고 있구나. 전신을 휘감던 내 슬픔의 갈기, 바다의 칠흑 속, 깊이 수장시키고 내 안의 빛나던 램프 아직도 당당히 빛나고 있구나. 관철동에서 혹은 소공동에서 또는 와이 엠 씨 에이 뒷골목에서, 웅숭이며 헌 비닐조각 마냥 서걱이며 나뒹굴던 우리의 빛나던 젊음. 그러나 오늘 술 마시고 고기 먹고 배불리어 이 길목 지나며, 아 아, 정말로 미안하구나 내 추억아. 어둠 속 빛나던 나의 램프여. 과녁을 향해 떠난 화살, 그 시위, 아직 부르르 내 안에서 떨고 있는데, 떨고 있는데...... *시선집, 견딤에 대하여, 시선사 지글거리고 싶은 중년의 - 윤석산 연탄불 위의 지글거리는 돼지고기가 먹고 싶다..

한줄 詩 2018.01.14

옛날 노새가 지나갔다 - 송찬호

옛날 노새가 지나갔다 - 송찬호 그는 앉은뱅이 키만 한 그 돌이 왜 독재자가 됐는지 끝까지 이해하려고 애썼다 하여 그는 마당에 돌을 끌어다 매몰차게 다 파묻진 않고 돌의 이마가 보이게 묻었다 그리고 그가 기르던 토끼의 자치 공화제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실패의 상심으로 토끼들이 번번이 죽어 나갈 때 무정한 돌이여, 하고 마당에 나가 돌의 이마를 짚어보곤 하였다 그는 이제 소소한 일과로 하루를 보낸다 들에 나가 감자를 캐고 해바라기를 키우고 부서진 문짝이나 새는 지붕을 고치고 그러다 문득 가슴에 다시 이는 불을 끄다 생각해 보면, 좋은 시절은 이미 지나간 것, 아니, 아직 오지 않은 것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허리 둥치가 구부러진 버드나무 앞으로 느릿느릿 옛날 노새가 지나갔다 *시집, 분홍 나막신..

한줄 詩 2018.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