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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가 붉어지는 이유 - 이강산

모과가 붉어지는 이유 - 이강산 그러니까 내가 이 골목을 고집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늦바람이 든 거다 곰곰 짚어보자면 바람은 생의 발단쯤에서 복선처럼 스쳐갔던 것, 절정의 뒤꼍에서 가으내 골목 힐끔대는 이 노릇이란 내게 휘어질 생의 굽이가 한마디쯤 더 남아 있는 탓이려니. 때도 없이 붉어지다 뼈가 부러진 옆집 대추나무 훔쳐보듯 은근슬쩍 바라보면 봉충다리 막냇누이의 봉숭아물 같은, 눈물 같은 선홍(鮮紅). 누군가의 연모 지우려 제 스스로 허벅지 찌르지 않고서야 저토록 노랗게 붉어질 이유가 없지 않느냐 늦바람이 든 거다 저도 나처럼 울긋불긋 바람의 단풍이 든 거다 *이강산 시집, 모항, 실천문학사 구절사 - 이강산 허물어진 산신각 터 벼랑 끝은 가을이다 벼랑 아래 가을은 어쩌다, 저토록 깊어서 손금 가늘고 빛..

한줄 詩 2018.01.06

폐차 - 서영택

폐차 - 서영택 공터에 누가 세워 놓았을까 웅크리고 앉은 자동차가 멈춰 있다 나사가 빠진 검은 폐타이어 어둠 속 물컹한 아, 죽음의 혓자국들 헐렁해진 늙은 몸이 앞만 보고 달려가 바람 빠진 맨살이 닳고 닳았다 제 몸의 헐거움을 보고 있을까 저승도 돈 없으면 못 가는 세상 산자락 외곽 산 밑 폐차 살이가 벌써 저승을 갔을 몸인데 자동차세가 밀려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지 못했다 살아있는 명부가 구천이 아닌 구청에서 떠돈다 *시집, 현동 381번지, 한국문연 아름다운 불륜의 사회 - 서영택 1 키가 작고 못생긴 나는 늘 왕따였다 가방끈이 짧아 취직도 못했고 운전 기술을 배워 택시 운전으로 먹고 살았다 시간마다 뒷좌석에 손님들이 바뀌는 동안 흥분한 손님들의 고성이 들렸다 사회 부조리와 썩은 제도를 푸념처럼 늘어 ..

한줄 詩 2018.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