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리움의 역사 - 전윤호

마루안 2018. 1. 13. 23:26



그리움의 역사 - 전윤호



내 생각에 갇혀
사막이 되었다
머리엔 만년설이 내리고
점점 깊어지는 늑골엔 모래바람이 불었다
한 만 년 고독하려 하였으나
스멀스멀 일어나는 그리움이
가슴을 뚫고 우물을 만들었다
지붕을 올리고 밭을 일구었다
밤이면 별빛 아래 깜박이는 더 작은 불빛들
사라지지 않더라 아무리 애써도
하나둘 지붕을 올리는 집들이 들어서더라
이제 한숨 더 자고 나면
눈앞까지 마천루가 올라오고
불면을 부르는 네온이 번득이리라


나는 제대로 실패했다



*시집, 천사들의 나라, 파란출판








무심코 정선 - 전윤호



뭐 후회한다고 그때가 돌아오나
젖은 눈을 가진 계집애들은
먼 데로 혼처를 찾아 떠나고
탄처럼 시커멓던 사내놈들은
타관을 떠돌다 늙어
배불뚝이가 되었다
다시 찾아온다고 옛사랑이 기다려 주나
불빛이 제 몸만 간신히 밝히는 공설운동장에서
토끼처럼 떨며 입 맞추던 애송이들
어디로 갔나 배신에 울면서
친구에게 주먹질하던
도무지 어른이 될 것 같지 않던 천둥벌거숭이들
친절하지 못한 미래를 욕하며
함부로 침을 뱉던 골목은 사라지고
우산을 펼친 시장엔
검은 비닐봉다리 하나씩 들고
낯선 사람들이 웃고 있는데
역전으로 가는 강가에 묶인 배처럼 흔들리며
너를 생각한다고 그때가 돌아오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