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콘크리트 묘지 - 조용환

마루안 2018. 1. 14. 19:50



콘크리트 묘지 - 조용환



세상천지에 집 한 칸 지니지 못한 축생이
배꼽을 덮고서야 손이 비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평생 부르르 떨기만 했을 비명을 꽉 움켜쥐어버렸다
저 콘크리트까지 날아온 새 한 마리
내려앉을 곳 바이없이 떠나버린다, 훨훨.....
저 축생의 연대기도 맹목의 시간이었으리라
줄탁동기 나누던 손, 그 숨결을 놓치지 않으려고
헤매던 저 손이 훨훨 날아간다
집 한 칸 없는 오래된 안녕과
삼시세끼와 까치소리에 먼발치로 나서던
탱자 울 비켜 난 바람도 있었으리라
나는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저렇듯 단호하게 새를 날려 보내는
비탈을 또 어느 축생이 지나다가
문득, 바이없이 미끄러지기도 하여
허망한 손을 털고 일어서서
어이쿠, 어머니!
생의 기척도 저만하면 완벽이겠다



*시집, 숲으로 돌아가는 마네킹, 문학의전당








하모니카 부는 밤 - 조용환



가로등 난만한 그리움이었지만
무작정 별들을 헤아리다 지치면
깜깜한 밤하늘에게도 때로는 친구가 필요하지
불 꺼진 들창에게도 불러줄 이름은 있지
잊히고 되살아나는 사람들을 배회하였던 것,
오래도록 어둔 회랑을 맴돌았지
콧노래를 부르며 담벼락마다 손장난을 남기면서
조용한 자죽 너머로 흥얼거리는
발자국소리도 그네들은 떠올리게 될 거야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지는
공터의 아이들과 늦은 애비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아라비안나이트 램프처럼
오래된 내력은 슬그머니 고백할 것이니
바람구멍 숭숭 드나들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문풍지마다 악보처럼 새겨지는 속절없는 드난살이
몇몇의 그림자들은 떠났고 그런 밤의 서늘하고도
애진 곡조는 할머니 쭈그렁 젖가슴 만지는
천진난만한 낙타들의 밤이니
저 목소리들은 다들 언덕 하나쯤 가지고 살아라
저 구멍 난 그리움들 모두 동굴 하나씩 지녀서
잘 살아라, 못 잊히는 곡절만 되새김질해야 하는
품 안의 느릿한 걸음걸이들, 그리하여
잘 익은 슬픔일수록 달콤한 것이니





# 조용환 시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시 잘 쓰는 사람이다. 시인이면 당연히 시를 잘 써야 하건만 세상에 시는 넘쳐나는데 마음 가는 시가 별로 없다. 오랜 기간 속으로 잘 다져온 시인의 내공이 느껴지는 시편들이다. 주목할 만한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