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묘지 - 김창균
나는 거기서
최초의 부드러운 한 사람을 만나는 중이다.
부화 준비를 막 끝낸 알처럼 금이 간
해변의 묘지 한 기
그 벌어진 금 사이로 부는 소금기 밴 바람들.
혹시 저 속에도
저물 대로 저문 생들이 모여
저녁밥을 끓이고 있을까
처녀의 젖가슴처럼 봉긋한 저 속엔
무슨 씨앗이 들어 있어
갈대가 자라고 키 작은 소나무가 자라고
때론 노란 원추리꽃도 피는 것일까.
단 한 번도 세상과 바다
그 어느 쪽도 편애한 적이 없었다는 듯
바다 쪽으로 반
육지 쪽으로 반
귀를 열어 놓고
웅크린 자세로 평생을 앉아
묘지들은 낮게
아주 낮게 중얼거린다.
그 중얼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어느새 나는
해변의 무덤 한 기 내 속에 들인다.
*시집,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세계사
적멸보궁 - 김창균
비 내리는 날 적멸보궁 갑니다
보궁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무슨 아늑한 무덤이 생각납니다.
일주문 앞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고
적멸로 가는 내 마음은 꼭
커피 두 스푼, 프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을 섞은
다방커피 같습니다.
잠시 일행을 버리고
단체 사진도 버리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마음도 버리고
들꽃들이 들어올린 부도 한 기를 바라보며
한 죽음을 생각하는데
하, 어느샌가
칡넝쿨이 내 몸을 타고 넘습니다.
# 김창균 시인은 1966년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강원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먼 북쪽>,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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