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명왕성에 가고 싶다 - 정호승

마루안 2018. 2. 21. 22:25



명왕성에 가고 싶다 - 정호승



너무 오래 살아 미안하다
어머니 아침마다 쓸쓸히 말씀하신다
빨리 죽어야 하는데 와 이렇게 안 죽노
주무시기 전에도
불도 끄지 않고 외로이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명왕성으로 빨리 가시고 싶은 것인가
별들의 명부전 명왕성에 가서
도대체 별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 것인가
그동안 어머니가 사랑했던 별들은
모두 어머니 가슴에서 떠올라 하나씩 둘씩 사라져갔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가슴에 뜬 별들이 사라진다는 것이므로
어머니 가슴에서 별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나도 명왕성에 가고 싶다
어머니를 모시고 명왕성에 가서 살고 싶다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창비








희망의 밤길 - 정호승



희망은 무섭다

희망이 있어도 희망은 무섭다

길을 가다가 길을 잃을 때

길의 손끝이 내 목덜미를 낚아챌 때

희망의 밤길은 무섭다

절망의 밤길보다 더 무섭다


어디로 가야 하나

달도 뜨지 않고

가로등도 다 꺼져버린 밤길에

나에게 아직 사용하지 않은 인생은 남아 있는가

나누어주어야 할 사랑은 남아 있는가

절망은 희망을 딛고 서 있지만

희망은 무엇을 딛고 서 있는가


아직 걸어가지 않은 밤길이 남아 있어도

희망은 무섭다

절망보다 더 무섭다

절망의 희망을 용서하기는 쉬워도

희망의 절망을 용서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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