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와 구상나무가 있는 공원 - 류흔 애인이 버리고 간 여자의 어깨가 흔들렸다 잔가지에 별이 열리는 밤 대규모의 슬픔이 군단(群團)처럼 걸어오는 밤이다 벤치는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며 감싸 쥔 손가락 사이로 주룩 흘러내린 울음을 핥는다 잘 가라 나쁜 놈 그쯤 욕은 해야겠지 이해한다 여자여 스산한 야밤에 홀로 우는 너는 누구냐? 을씨년이야 벤치는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원맨쇼의 달인이다 엊그젠 인부들이 다 큰 나무를 데려왔지 무언가를 꾸미거나 모색하는 매우 기획적인 성향의 구상나무 때론 곧이곧대로 풍경을 일러주는 구상나무 구름다리 건너 동편 호수 옆에 발목을 묻은 밤의 우두커니 낮에는 피라미드 형신에 푸른 관상이었던 이제는 검은 실루엣이 돼버린 비구상 비현실 같던 이별이 현실임을 깨달을 때 여자는 비구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