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지천명의 시간 - 전대호 시집

마루안 2022. 3. 29. 21:33

 

 

 

언젠가부터 나이에 관한 시가 나오면 유심히 들여다 본다. 아마도 50을 넘기고부터였을 것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어서 나이를 먹어 서른이 되고 싶었는데 마흔 넘길 때 즈음 이렇게 중년의 문턱을 넘는구나 서글펐었다.

 

마흔 아홉쯤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느낌이랄까. 해마다 오는 봄과 가는 가을은  그대로인데 세월을 보는 눈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물며 오십 넘기고는 오죽할까.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오십을 훌쩍 넘긴 지도 한참이다. 나이 드는 쓸쓸함 때문일까. 이런 제목이 붙은 시집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이순을 넘기면 더욱 민감할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문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어쨌든 시에 위로를 받으며 가능한 나이값은 하면서 살고 싶은 다짐을 자주 한다. 전대호 시인이 오십을 넘기면서 세 번째 시집을 냈다. 20대 중반에 두 권의 시집을 낸 후 25년 만이다. 이를 사반세기라고 하던가.

 

말이 사반세기지 강산이 서너 번은 바뀌고 남을 세월이다. 하긴 예전에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봤던 AI 시대가 되었다. 언어는 또 얼마나 바뀌었는가. 시그널, 딜레마, 트렌드, 리스크, 디테일, 매뉴얼, 어젠다, 컨텐츠, 피드백 등 영어로 대체된 이런 어휘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전대호 시인은 물리학을 전공하고 시를 썼던 특이한 이력이다. 단팥빵을 좋아했던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썼다고 한다. 그는 이 좋은 문학을 밀쳐 두고 파랗게 뜨겁던 나이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끓어 넘치는 문학병을 누르고 살았던 세월이 오죽했겠는가. 무당이 아무리 신내림을 거부하거나 감추고 살아도 도지는 신병은 작두를 타야만 낫듯이 시인도 어쩔 수 없다. 이 시집은 작두 위에서 무사히 내려온 시인의 고백이다.

 

 

*활짝 열린 위태로움 앞에서 홀로 묻는다.

난 여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것일까?

입체각 4파이로 열린 삶 속에 홀로 뜬 채로

배움을 청하니, 위태로움이여, 말해다오

난 여태 아름다움을 못 본 것이냐?

 

*시/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 마지막 부문

 

 

*내가 내린 닻

바닥에 닿지 않았지.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네,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음을,

어쩌면 아예 바닥이 없음을

알 만큼 아니까.

 

*시/ 닻과 연

 

 

시집은 5부로 나뉘어 실렸다. 다시 시작, 데뷔전, 마흔아홉, <마흔아홉, 그리고>, 지천명,이 소제목을 달고 배치되었다. 시인의 섬세한 의도와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첫 시, 그리고 마지막 시만 제대로 읽어도 이 시집을 절반쯤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첫 시

 

뿌리 - 전대호

 

어두우면,

뿌리가 되어 나아가라.

빛도 이곳엔 그렇게 임하리라.

구원하지 않는 무력함으로,

아무것도 마다하지 않는

캄캄한 사랑으로

 

 

*끝 시

 

배 - 전대호

 

다리도 날개도 없이

배만 우묵한 배 하나

기척 없이 기슭에 깃을 대고.

 

물결은 붉다 내 귓가에.

 

노을 불타니 타라 한다.

가서, 한가운데로 가서

살아갈 날들까지 다 사르라 한다.

 

 

이 시인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있어 옮긴다. 철학적 은유를 잔뜩 품은 아름다운 시를 쓰는 전대호 시인의 건필을 빈다. 자고로 문학은 먼저 쓰는 놈이 임자다.

 

*이렇게 아름답고 깊이 있는 시를 쓰는 전대호 시인의 침묵이 화려하게 개화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위안과 격려의 시들을 계속해서 보여주기를 희망하고 기다릴 것이다. *유자효 시인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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