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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벌레의 시간 - 안태현

자벌레의 시간 - 안태현 나는 여전히 숲을 통과하는 중이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불타는 연두 속에 갇혀 있다 나무들이 술렁거릴 때마다 멀미가 일어서 마지막에 닿을 겨울 항구를 떠올리게 된다 숲은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려는 의지로 충만하다 부러지고 쓰러지는 고통을 무한하게 허용하는 세계 끌어안아야 하는 가슴들이 너무 많아서 바람 부는 밤엔 그림자들이 유령처럼 떠다니며 울어댄다 갈 곳을 찾아 헤맨다 아무것도 모의 한 바 없는 내 생도 거기에 있어서 나는 숲의 이면을 들추고 드나드는 모든 흔적을 일일이 기록하려는 근시처럼 기어서 기어이 간다 느리지만 빛나는 태도로 목이 달아난 꽃들을 줍기도 하면서 데인 듯이 한 시절을 지나간다 *시집, 저녁 무렵에 모자 달래기, 시로여는세상 어느 날 갈피 - 안태현 골목이 잘 녹아..

한줄 詩 2020.05.16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 김용훈

호텔 사우나 남탕 옷장에서 거액이 든 가방이 발견된다. 이 돈을 발견한 사람은 사우나 탈의실에서 야근 근무를 하는 중년 남자다. 부모가 운영하던 횟집을 말아 먹고 아내와 맞벌이를 하며 재기를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뿐이라 남자는 사우나 직원으로 아내는 터미널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돈을 번다. 대학생인 딸은 학자금 대출을 받지 못해 휴학을 해야 하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까지 모셔야 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은 막막한 상황에서 난데없는 돈가방이라니,, 누가 두고 간 건지도 모르는 이 돈가방은 음침한 사연과 함께 얽히고 설킨 악연들로 연결 되어 있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돈이 필요하다. 사채를 빌려 썼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때문에 전전긍긍이다. 사채 업자는 목숨을 위협하며..

세줄 映 2020.05.16

우리가 너무 가엾다 - 권혁소 시집

권혁소 시인은 35년의 시력에 비해 늦게 알았다. 을 읽고 시인을 알았고 를 찾아 읽었다. 기억해 놓았던 시인이었는데 새 시집이 나왔다. 일곱 번째 시집이란다. 삶창에서 나오는 시집은 가능한 읽으려고 한다. 전태일의 정신과 노동 친화적이라 일종의 빚진 기분으로 찾아 읽는 출판사다. 그렇다고 모든 시집을 다 읽을 수도 또 읽었다 해도 모든 시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시에 공감했다 해도 읽고 나서 후기를 쓰고 싶은 시집은 드물다.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다.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시를 억지로 읽는 것도 일종의 고문이다. 마음 가는 책 읽기도 모자란 시간에 자처해서 전두엽에 무리를 줄 필요가 있을까. 문학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온전히 내 것이 된다. 권혁소의 이번 시집이 그랬다. 억지로 쥐어 짠 시..

네줄 冊 2020.05.15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 김재명

이 책은 10년 전에 나온 같은 제목의 책 개정판이다. 2018년에 트럼프가 예루살렘으로 미국 대사관을 이전할 때 많은 국가들이 반대했고 세계 지성인들이 우려를 표명했다. 안 그래도 세계의 화약고인데 더욱 치열한 분쟁이 일어날 것을 염려했다. 이 책이 증보판을 낸 이유도 이런 과정을 비판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 김재명은 지구촌의 국제 분쟁 지역을 다니면서 취재 보도를 했다. 신문사 기자직을 그만 두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의 취재 열정은 더욱 많아졌다.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는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근하게 배웠다. 미국의 영향 탓에 우리는 비교적 우호적이다. 사막의 불모지를 일궈 경작지로 ..

네줄 冊 2020.05.12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 이승주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 이승주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있다 낮에는 앞산 보면 되고 날 저물어 산 볼 수 없는 캄캄한 밤엔 그 사람 생각 생애 단 한 번의 순간을 호명하지 못하고 꽃을 지난 다디단 단내의 그리움으로 맞이해야 할 밤들 그 사람으로 인해 고쳐질 그 사람으로 인해 깊어진 병 그 사람을 떠올렸다 함께 떠오른 생각 그 사람을 잊었다 함께 잊어버린 생각 지금, 그 시간을 다 찾을 순 없어도 열일곱 여학생보다 마흔이 더 아름다운 그 사람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있다 *시집, 물의 식도, 천년의시작 슬픔에 대하여 좀 아는 그 - 이승주 슬픔에 대하여 좀 아는 사람들은 기쁨에 대하여 좀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눈우물이 더 깊다 슬픔에 대하여 좀 아는 그는 나는 슬픔에 대하여 좀 안다고 말하진 않지만 ..

한줄 詩 2020.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