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편지 - 나호열
절뚝이며 느리게 온 봄은
목발의 발자국을 남기고 갔다
아쉬운 사람의 얼굴을 닮은 목련은
눈을 감아도 올해도 피고 지고
눈물 떨어진 자리에 자운영
행여 밟을까 먼 산 바라보면
뻐꾸기 울음소리에
푸르게 돋아 오르는 이름이 있어
나는 편지를 쓴다
외로워 별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별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별인지 몰라 더 외로운 사람에게
주소를 몰라도 가닿을 편지를 쓴다
심장에서 타오르는 장미 한 송이
라일락 향기에 묶었으나
그예 남은 그림자 한 장
봄이 지나간 자리에 놓인
꿈이라는 한 짝의 신발
우리는 모두 그 꽃말을 기억하고 있다
*시집/ 안녕, 베이비 박스/ 시로여는세상
몽유(夢遊) - 나호열
어떤 꽃은 제 몸을 사루면서 빛을 내밀고
또 어떤 꽃은 제 마음을 지우면서 향을 뿌리듯
허공에 울음을 떨구어놓고
멀리 날아가는 새가 그러하던가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면
웅크린 채 앉아있는 그림자를
고독이라 부를까
세상은 넓은데 갈 곳이 없어
감옥을 등에 지고 어디로 갈까
전생에 유목민이었던 나는
어느 속담을 기억한다
안녕이란 말 대신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는
봄이 지나고 나서야
봄을 그리워하는
몽유(夢遊)의 날들
# 나호열 시인은 1953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86년 <월간문학>,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촉도>, <눈물이 시킨 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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