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둔 오지(奧地) - 배정숙 보리앵두 제 풀에 익어 떨어지던 여름이 안으로 걸어 잠근 빗장의 암호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더딘 저녁상에 잰걸음으로 와서 고꾸라지던 허기의 붉은 발목 그 왼쪽은 늘 가을 쪽으로 기울고 싶었습니다 장독대 옆 정구지꽃 잘 퍼진 흰 쌀밥에 흘러간 시간이 배고파 칭얼댑니다 어머니가 읽고 또 읽고 유일신으로 신봉하시던 콩밭고랑 경전 개망초꽃 노란 눈알만 극구 제철 만났습니다 어머니 하고 불러보는 목젖 밑으로 울컥 솟는 초저녁 달 발아래로 엎어지는 눈물 냄새 날갯죽지 느슨하게 풀어놓고 싫어요- 아니오- 맘껏 외쳐도 덜미가 편안한 안전지대 이제 풋감 같은 큰 누이가 살이 오르던 찰진 시간을 어디에 숨겨놓고 바람이 편히 잠 들까요 마지막 모음의 탯자리까지 잃어버리고 허접한 부리를 어디에 묻..